‘교회 누나’ 이연정(27·인천 주사랑교회)씨의 직업은 슈즈디자이너다. 어려서부터 교회생활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성실한 크리스천이다. 교회학교와 청년회 등을 거쳤고 교회학교 교사가 되어 하나님을 섬겼다. 교회 후배들에게 예쁜 연정씨는 멘토였고 때론 ‘떡볶이’였다.
그 연정씨는 지금 미션을 이루기 위해 바쁘다. 기도 가운데 ‘신발 선교사’ 응답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구촌 맨발의 어린이들에게 신발을 신기는 일, 이 간단한 일이 사막을 건너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을 연정씨는 요즘 절감한다.
“세례자 요한이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고 하잖아요. 제가 딱 그 심정이죠. 늘 하나님이 공기와 물처럼 또 언제나 골라 신을 수 있는 신발처럼 나를 위해 계신다고 착각했어요. 참된 주님의 음성을 그간 귓등으로도 안 듣고 살았다 싶더라고요.”
연정씨는 ‘엄친딸’이라고 불릴 만큼 부모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자랐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을 배워 초·중·고교 내내 선수로 살았다. 수중발레가 갖는 묘한 매력은 연정씨를 스타 의식이 들게끔 만들었다. 훈련은 고됐으나 주목받는 삶은 들뜨게 했다. 최고의 수중발레 선수가 되는 것, 그것이 삶의 목표였다.
연정씨는 고교 시절 YC싱크로즈 팀에 속해 전국수영대회 수중발레 부문 2등을 하는 등 국가대표를 향한 노력을 계속했다.
“오직 수중발레밖에 몰랐으니까 독하게 했죠. 새벽기도를 마치고 400m를 8∼9번을 질주하다 기절했을 정도로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지 않으려고 했으니까요. 이거 아니면 안 되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임했었어요.”
그러나 연정씨는 부상 등으로 선수생활을 접어야 했다. 대학입시를 앞둔 시점이어서 모든 것이 무너진 것과 다름없었다. 원망이 쌓였다. 그 무렵 연정씨는 큰아버지의 캄보디아 선교 현장을 경험했다. 가난한 나라 아이들은 맨발이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후원하고 있는 NGO 아이들도 역시 맨발이었다. 한 번도 그 아이들이 맨발이라고 의식하지 못했다.
“큰아버지가 ‘네가 가진 신발을 신기면 되지 않겠니’라고 말씀하시는데 뭔가 쿵 하는 느낌이었어요. 그러면서 ‘기도해 보아라. 기도에 답이 있다’고 하셨어요. 예수께서 제자를 파견할 때 신발만 신고 두벌 옷도 입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 그제야 들어오는 거예요.”
연정씨는 영국 런던패션대학(LCF)에 진학했다. 제화 명문학교다. 내내 운동만 하던 그녀에게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신 미션이다 보니 수중발레 하던 때와 차원이 다른 도전 의식이 생겼다.
“선생님들이 불 끄고 드로잉을 시킬 정도로 혹독하게 가르치셨어요. 슈즈 디자인에 수준 높은 지적 능력을 요구하는 소위 패션저널리즘이라는 사고도 요구했고요. 모태 신앙인으로 다져진 새벽기도와 부모, 교회 식구들의 중보기도로 버텼습니다. 무엇보다 주님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고요.”
서울 성동구 성수역 3번 출구 앞 제화거리엔 연정씨의 작업실 ‘얀시브랜드연구소’가 있다. 해외파 청년 제화전문가 3명과 함께 지난해 2월 창업한 이 연구소는 전통 제화 방식에서 벗어나 IT기반의 디자인과 공정의 효율적 관리를 곁들인 시스템을 자랑한다. 이탈리아 선진 제화 기술이 접목됐다. 하지만 검품과 재무·회계 등 산적한 업무는 청년 창업자들에게 ‘일터가 곧 숙소’가 될 만큼 힘든 일이기도 하다.
“친환경적이면서 원가가 덜 들고 그러면서도 디자인적으로 우수한 신발을 ‘맨발의 아이들’에게 신기고 싶어요. 이윤을 맨발의 아이들에게 돌리는 공정기업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아직 청년 창업이라 본격적인 신발 선교 단계는 갖추지 못했어도 주님과 함께라면 걱정 없어요. 성서에서 신발을 신는 것은 자유인임을 상징한답니다. 아이들에게 내가 만든 신발로 자유를 신기고 싶어요.”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
[미션&피플] 크리스천 슈즈디자이너 이연정씨 “지구촌 맨발의 아이들에게 ‘자유’를 신겨주고 싶어요”
입력 2015-08-24 0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