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문흥호] DMZ의 ‘꿈’은 사라지나

입력 2015-08-24 00:30

박근혜정부만큼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한 정부도 없다. 신뢰와 신의를 중요한 가치로 내세웠다. 특히 정권 출범과 함께 추진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모두가 행복한 통일’은 물론 비무장지대(DMZ)를 ‘꿈을 이루는 지대(Dream Making Zone)’로 만들자는 최근의 제안에 이르기까지 대북정책의 기조는 신뢰가 핵심이었다. 그중에서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남북관계의 경색국면을 극복할 유연한 정책구상으로 국내외의 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지금 남북관계는 상호신뢰를 거론하기조차 민망한 상황이다. 신뢰와 합작의 기반 위에서 평화 공원, 꿈을 이루는 텃밭으로 변모돼야 할 DMZ에서 정반대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마치 지구촌의 어느 구석진 곳에서나 있음직한 무력 충돌이 우리의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무도하고 비정상적인 북한 리더십이 개과천선하는 것 이외엔 방법이 없는가. 정말 그런가.

필자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이러한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박 대통령이 제안했던 DMZ의 꿈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절망적인 사건이 빈발하는 것도 결국 우리가 꿈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 꿈을 접지 않는 대신 반드시 선행해야 할 일들이 있다.

우선 꿈과 현실을 보다 차갑게 인식해야 한다. 암담한 현실 때문에 꿈을 접어서도 안 되지만 자기만의 꿈에 과도하게 취해서도 안 된다. 지난 60여년 중무장한 병력이 코앞에서 대치하고 급기야 포격전까지 벌이는 것이 현실이요, 이를 어떻게든 평화와 공영의 포옹으로 반전시키는 것이 꿈이다. 불타는 적개심으로 총구를 겨누면서 서로가 행복한 꿈을 이룰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꽁꽁 얼어붙은 서로의 가슴을 조금씩 녹여가며 꿈을 꾸어야 한다.

서로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꿈 얘기는 공허할 뿐만 아니라 자칫 큰 상처와 후유증을 남긴다. 최근 남북관계의 악화는 상호 공감 없는 꿈과 통일 열기가 과도하게 표출된 탓일 수도 있다. 실속 없이 소리치고 조급할수록 꿈의 실현은 늦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편 꿈을 이루어 가는 과정과 그 결과로 나타날 한반도의 미래상에 대한 국제사회의 긍정적 이해와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우리의 간절한 마음과 노력만으로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정작 모두가 행복한 통일 실현에 별 뜻이 없는 것과도 같다. 지금 이 땅의 어두운 현실이 주변국들의 이해 다툼에서 비롯되었듯이 이를 걷어내기 위한 우리의 노력도 이들의 동참 없이는 어렵다.

주변국들은 퇴보를 거듭하는 현 남북관계를 어찌 보겠는가. 과연 누가 우리와 함께 꿈을 꾸고 싶어 할까. 중국의 승전 70주년 기념식 참석을 비롯한 박 대통령의 하반기 외교 일정이 한반도 평화에 대한 주변국의 이해와 지지 확보에 집중되어야 하는 절박한 이유다.

현 상황에서 DMZ의 꿈 실현에 공을 들이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다. 꿈을 위한 꿈 얘기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꿈조차 꾸지 못한다면 우리는 무슨 기운으로 미래를 설계할 것인가. 한반도의 밝은 미래상 하나 그려주지 못하면서 우리의 자식들에게 어떠한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인가.

닷새 뒤 29일은 나라를 잃은 ‘경술국치(庚戌國恥)’ 백다섯 해가 되는 날이다. 나라를 잃었던 과거도 한없이 부끄럽지만 광복 70년을 무색하게 하는 남북한의 험악한 대결구조는 더욱 부끄럽다. 그래서 우리는 꿈을 포기할 수 없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하지 않았나. 절망의 끝에 꿈과 희망이 있을 것이다. 남북 고위급 접촉이 그 희망의 시작이길 빈다.

문흥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