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준(準)전시 상태에 돌입하는 등 21일에도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자 전방지역 주민들은 폭풍전야 같은 하루를 보냈다. 포격 도발이 있었던 경기도 연천군 일대에 내려진 대피령은 이날 오후 해제됐지만 불안감까지 사라지지는 않았다. 서해상 최전방인 서해5도 해역에는 조업이 금지됐다. 강원도 전방지역 민통선은 출입이 통제됐다.
전날 주민 대피가 이뤄졌던 강화도 등에선 대피령이 해제되면서 일상을 회복했다. 서울 등 후방지역은 대체로 평온한 하루를 보냈다. 다만 추가 도발 우려감에 하루 종일 촉각을 곤두세웠다.
◇“전쟁 나서 집 부서지면 어떡하죠”=북한의 도발은 동심에 생채기를 냈다. 연천군 삼곶리 대피소에서 지내고 있는 초등학교 4학년 최모(10)군은 “어제 너무 무서웠지만 잠은 잘 잤어요. 북한군이 또 포탄을 쏘고 전쟁이 날까봐 두려워요. 전쟁 나면 집이 부서질 수도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최군은 대피소에서 11살, 13살인 누나들과 함께 수박을 먹고 놀면서도 불안한 눈초리를 감추지 못했다. 최군의 누나는 “전쟁이 나서 가족과 헤어지는 게 두려워요”라고 말했다.
어른도 두렵긴 마찬가지다. 삼곶리 주민 김영자(79·여)씨는 “어제 더워서 위에 속옷만 입고 있다가 허겁지겁 겉옷을 껴입고 나왔는데 옷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정도였다”고 했다. 그는 “연천군 주민들은 북한이 무슨 일만 벌이면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빨리 통일돼서 이런 불안에서 해방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주민들은 농사 걱정을 많이 했다. 일할 수 있는 ‘젊은’ 주민들은 농사일을 보러 나가고 대피소에는 노인과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주민 박점쇠(67)씨는 적십자사에서 준비한 저녁을 먹으면서도 고추농사 걱정이 가득했다. 그는 “널어놓은 고추 걱정에 3번이나 비닐하우스를 오갔다”며 “북한이 또 포탄을 쏠까봐 걱정되지만 농사일에서 손을 뗄 순 없다”고 말했다.
오후 6시 대피령이 해제되자 대피소에 모였던 주민들은 하나둘 집으로 돌아갔다. 부부인 허화일(73)씨와 신현창(67·여)씨는 “대피는 처음이라 불안했는데 집에 가니 홀가분하다”며 발걸음을 뗐다. 주민들은 대부분은 북한이 대북 확성기 철거 시한으로 제시한 22일 오후 5시 이후에 벌어질 수 있는 일이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서해5도 어선 조업 통제, 고성 남북출입사무소 ‘썰렁’=강원도 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군 등 5개 접경지역 주민들은 대피소 등 안전시설을 점검하느라 분주했다. 안보관광지는 이틀째 운영이 전면 중단됐다. 철원 제2땅굴과 평화전망대, 양구 제4땅굴과 을지전망대, 고성 통일전망대, 강원 DMZ박물관 등은 적막감만 감돌았다. 고성 남북출입사무소(CIQ)도 필수 인력을 제외하고 직원 전원을 철수시켜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연출했다.
연천과 인접한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주민 50여명은 북한의 도발 직후인 20일 오후 인근 안전지대로 대피했다가 밤늦게 귀가했지만 아직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한 주민은 “군부대에서 주민 대피를 요청했을 때 대피소가 너무 멀어 나이 많은 노인들은 대부분 집에 있었다”면서 “수십 년째 똑같은 상황이 반복돼 이제는 일상이 됐지만 여전히 일이 손에 잘 안 잡힌다”고 말했다.
서해안 최북단인 서해5도에선 어선들의 조업이 통제됐다. 연평도 박태원 어촌계장은 “주민들이 인질이냐”며 “어선들은 20일 오후 5시부터 22일 오전까지 조업을 통제해 낚시 손님 70여명에게 예약을 취소했다. 그런데 관광객들과 면회 오는 사람들은 여객선을 타고 섬으로 들어오는 등 한심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서해5도 주민들은 “연평도 포격사태 이후 발전되거나 개선된 것이 전혀 없어 한마디로 짜증난다”며 “대피소로 가라는 방송이 나와도 주민들이 기피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전날 밤늦게 대피령이 해제된 인천 강화군 교동도 주민들은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갔다. 다만 북한의 추가 도발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지 않을까 걱정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주민들은 “평소 주말이면 관광버스를 이용해 수백명이 찾아오고, 개인 여행자도 50∼100명이 찾아와 지역경제에 도움이 됐다”며 “이번 주말에 관광객들이 얼마나 올지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연천·강화·철원=신훈 정창교 서승진 기자 zorba@kmib.co.kr
[北 ‘추가 도발’ 조짐] “전쟁날까 두려워” “관광객 끊기면 어쩌나”… 불안·초조
입력 2015-08-22 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