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시장이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중국시장 불안과 미국 금리인상이라는 양대 대외 악재로 허덕이는 와중에 북한발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겹쳤다. 공포감에 휩싸인 투자자들은 증시를 떠나고 있다. 외국인들은 12일째 ‘셀 코리아’에 나섰고, 개인투자자들도 투매에 가세했다. 각종 위험 지표들도 올 들어 최고 수준으로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역사적 경험에 비춰볼 때 북한리스크가 한국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 다만 이번 사태가 각종 대외 악재가 산적해 있는 시점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향후 상황이 악화할 경우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는 기간도 길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시퍼렇게 멍든 금융시장=21일 코스피지수는 개장하자마자 1860선 초반까지 추락했다가 기관의 저가 매수세가 유입되면서 낙폭을 만회했지만 2013년 8월 이후 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로 장을 마감했다. 코스닥지수는 장중 한때 6% 이상 폭락하며 615선까지 밀릴 만큼 충격파가 컸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4376억원을 순매도하며 지난 5일부터 12일 연속 ‘팔자’ 대열에 섰다. 길을 잃은 개인들도 5340억원을 순매도하며 증시 하락세를 이끌었다. 예측범위를 뛰어넘는 악재들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증시에서 가장 위험한 불확실성이 극대화되는 모양새다. 대외 악재로 투자심리가 악화된 가운데 ‘돌발 변수’가 터지면서 투자자들이 느끼는 충격은 더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정성춘 국제거시금융실장은 “최근에 여러 쇼크들이 중첩되면서 서로 물고 물리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북한 리스크까지 발생하다 보니 투자자들이 어찌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면서 ‘오버슈팅’(충격으로 주가·환율·금리 등이 일시적으로 급등락하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예전처럼 영향은 제한적 vs 악재 ‘중첩효과’ 무시 못해=다만 과거 경험으로 볼 때 이번 북한의 포격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란 시각도 있다. 북한 리스크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대표 격으로 거론되긴 하지만 사건 발생 당일을 제외하면 증시가 별 탈 없이 회복됐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금융시장의 기초체력이 과거와 달리 강해졌다는 근거로 제시되기도 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국제금융센터가 함께 개최한 금융시장 동향점검회의 참석자들은 “한국의 기초 지표들이 여전히 양호한 수준이며 글로벌 금융시장도 과거 위기상황에 비해 안정된 모습”이라며 “시장참가자들이 향후 시장동향에 과도하게 반응할 상황은 아니다”고 시장 안정을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한국의 현재 국가신용등급(AA-)에는 일정 수준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이미 반영돼 있다”며 등급조정 의사가 없음을 시사했다.
문제는 예상치 못한 악재가 주는 충격과 경색된 남북관계가 장기화될 가능성이다. 과거 북한 리스크가 개별 악재로 인식되면서 금융시장이 단기 충격을 딛고 빠르게 회복됐다면 지금은 각종 변수들이 하나같이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삼성증권 김용구 연구원은 “미국의 금리인상 리스크, 중국 경기 둔화, 글로벌 원자재 시장 부진이 한꺼번에 결집하는 상황에서 ‘설상가상격’ 북한 리스크까지 가세한 환경은 부담스러운 부분”이라며 “신중한 시장대응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위험지표 일제히 급등=한국의 부도위험 지표는 2년3개월 만에 최고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시장정보업체 마킷에 따르면 한국의 5년 만기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에 붙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일본 도쿄시장(오후 3시41분 현재)에서 전날보다 9.30bp 상승한 77.30bp(1bp=0.01% 포인트)로 집계됐다. 2013년 5월 31일(79.02bp) 이후 최고치다. 지난 5월까지도 CDS 프리미엄은 46bp대로 낮은 수준을 유지했지만 지난 10일 중국이 위안화 전격 평가절하를 한 이후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다. ‘공포 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 지수(VKOSPI)도 장중 한때 19.18까지 치솟았다가 18.49로 마감했다. 올해 들어 가장 높은 수준이며, 지난해 10월 17일(18.65) 이후 10개월 만에 최고치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北 ‘추가 도발’ 조짐] 美·中 쇼크에 北 리스크까지… 금융시장 날개 없는 추락
입력 2015-08-22 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