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본 노동개혁] 아이 맡길 곳 없고… 직장선 눈치… 직장맘은 서럽다

입력 2015-08-22 02:14

IT 중소기업의 회계팀에서 일했던 김모(29·여)씨는 출산 2주를 앞둔 지난해 10월 우려했던 ‘그 얘기’를 들었다. 회사는 “새 사람을 들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며 3개월의 출산휴가가 끝나고 바로 복귀하라고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3개월 뒤엔 아기를 시댁에 맡기고 출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댁에서 갑자기 난색을 표하면서 아기를 맡길 곳이 없어졌다.

김씨는 1년 정도 육아휴직을 하고 싶다고 회사에 말했다. 회사는 퇴사 이야기를 내비쳤다. 김씨는 “갓난아이를 사고가 끊이지 않는 어린이집에 보낼 수도 없고 마음 놓고 맡길 곳도 없어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며 “아이를 하나 더 낳고 싶어도 이러다 완전히 눌러앉게 될까봐 엄두가 안 난다”고 했다.

◇거꾸로 가는 ‘모성 보호’=육아휴직 중인 의류회사 디자이너 강모(31·여)씨는 출산 전 휴가를 내기까지 회사와 몇 차례 줄다리기를 해야만 했다. 임신 초기였던 지난가을에 육아기 단축 근로제가 도입됐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 인사팀에 문의했지만 “알아보겠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업무 특성상 야근이 잦고 출장도 많지만 누구 하나 “법에 정해진 권리를 행사하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강씨는 “회사는 대체인력을 뽑으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며 “대부분은 ‘나도 겪어 봐서 안다’며 은근히 업무를 강요했다”고 토로했다.

통계청은 2013년 기준으로 만 15세 이상 기혼여성(1632만2000여명) 가운데 경제활동인구 비율은 50.1%라고 21일 밝혔다. 그나마도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 대부분은 이미 자녀를 다 키운 세대다. 기혼여성 경제활동인구 중 20, 30대는 21.8%에 그쳤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동시에 경제활동을 하기엔 ‘현실의 벽’이 너무 높은 것이다.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기고 일터로 나가는 ‘직장 맘’들은 매일 살얼음 위를 걷는다. 네 살 아들과 두 살 딸을 둔 학원강사인 서모(35·여)씨는 지난 6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로 발을 동동 굴렀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평소 어린이집에 두 아이를 맡기고 학원에서 일을 했지만 메르스 때문에 어린이집이 1주일간 휴원을 하면서 당장 아이들을 맡아 줄 곳을 찾지 못했다. 서씨는 “이웃집을 돌면서 반나절만 맡아 주실 수 없냐고 애걸하다가 한 아주머니가 도와주셨다. 다음 날은 차로 2시간 거리에 떨어져 사는 친정어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갑자기 아이가 아프거나 어린이집에서 돌봐줄 수 없을 때마다 직장에도 가정에도 죄책감이 든다”고 덧붙였다.

서울의 한 공공기관에 다니는 이모(33·여)씨는 일반 직장인보다 퇴근시간이 빠르고 규칙적인데도 매일 오후 업무를 마치면 부랴부랴 어린이집으로 달려간다. 이씨는 “업무 시간과 육아기관의 교육 시간이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것이 가장 문제”라고 했다.

◇저출산은 모두의 책임=우리나라는 초저출산율로 ‘국가 소멸’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도 걱정 없이 아이를 낳고 기르기엔 정부 대책이 시원찮다. 기업 대부분도 직원들의 출산·육아를 배려하지 않는다.

저출산은 노동인구·경제활력의 감소로 직결된다. 정부와 기업, 개인이 모두 책임을 안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출산·육아의 부담을 거의 전적으로 개인에게 떠넘기고 있다. 정부는 세수 부족을, 기업은 비용부담만을 탓한다. 박근혜정부는 저출산 대책으로 무상보육 및 무상교육 확대, 여성 고용 활성화 및 양성평등 확산, 청년 고용 활성화, 시간선택제 일자리 활성화를 내걸고 있지만 국민들은 한참 부족하다고 느낀다.

전문가들은 국가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저출산 대책을 놓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 재정과 정책역량을 집중해야 해결할 수 있는 난제이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낳기만 하면 국가가 길러준다’는 목표를 내걸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꾸준하게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1994년 1.6명이던 합계출산율은 2008년 2.02명으로 뛰어올랐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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