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치킨 게임’ 도박을 시작했다. ‘작은 것’에서 ‘조금 더 큰 것’으로, 다시 ‘더 큰 것’으로 도발 수위를 계속 높이는 식으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격화시키고 있다.
북한의 연쇄 도발에는 남한 정부와 군이 강경일변도 맞대응에 나서지 못할 것이라는 김 제1비서와 북한 최고 지도부의 판단이 깔려 있다. 마치 ‘겁쟁이’처럼 우리 정부가 뒤로 물러설 것이라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군사 전문가들은 21일 “반드시 북한이 추가 도발을 감행해올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전쟁 공포로 남한 사회의 혼란 및 남남 갈등까지 노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은 이번 도발을 통해 우리 측에 ‘전쟁’과 ‘평화’ 중 택일하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지난 4일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 이후 우리 군이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보복 조치로 들고 나오자 북한은 이를 역이용했다. DMZ 도발과 이번 포격을 ‘딱 잡아떼며’ 부인한 뒤 우리 군의 대북 심리전이 남북 군사 긴장의 주범인 것처럼 선전했다. 우리가 먼저 자신들을 자극했고, 자신들의 확성기 제거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전면전을 벌일 것처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태의 책임을 전적으로 남측으로 돌리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포착이 쉽지 않은 14.5㎜ 고사포탄을 단 한 발만 발사한 뒤 “고사포탄인지 소총탄인지 로켓탄인지 분별하지도 못하고 군사적 도발을 거리낌 없이 감행했다”고 우리 측을 비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북한은 비교적 오랜 시간 이번 도발을 준비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10일 우리 군이 DMZ 도발 배후로 자신들을 지목했음에도 침묵을 유지하다 나흘이 지난 14일에야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다시 엿새가 지난 20일 서부전선 포격 도발을 감행했다. 시간을 두고 우리 군과 정치권, 언론의 반응을 살피면서 향후 대응 방안을 계획했다는 분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서부전선 포격 도발이 일어난 직후 북한 지도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북한은 포격을 한 직후 청와대로 전통문을 보내 “사태 수습을 위해 노력할 의사가 있다”고 하더니, 곧이어 “48시간 내에 대북 방송을 중단하지 않으면 군사행동을 시작하겠다”고 협박했다. 전형적인 ‘화전(和戰)’ 양면전술로, 김 제1비서를 중심으로 전체 지도부가 일관된 대응 체계를 마련한 것이다.
실제로 우리 군이 북한의 의도대로 군사대결을 회피할 경우 북한은 이를 ‘남한의 도발을 격퇴한 승리’라고 과장하며 선전전을 펼칠 게 틀림없다. 김 제1비서의 업적으로 추켜세워 체제 결속력과 충성심을 높이는 한편 국제사회에는 군사적 대립의 책임을 남측에 돌리는 식이다. 북한은 대외적으로 2010년 천안함 폭침이 자신들 소행이 아니라고 부정하면서도 내부에서는 김 제1비서의 업적이라 선전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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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8-22 0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