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약적인 정보기술의 발달로 커뮤니케이션 전파 속도는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빨라졌다. 옛날, 발 없는 말이 고작 천리를 가는 데 수개월이 걸렸다면 요즘은 전 세계인이 동시간대에 정보를 공유한다. 각종 정보가 시차 없이 국경을 넘나드는 세상이 도래하면서 현대전에서 심리전의 중요성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초한(楚漢)의 명운을 가른 해하(垓下)전투에서 한고조 유방이 쓴 사면초가 전술은 심리전의 고전이다. 해하에서 초나라 군대를 포위한 유방의 한나라 군사들은 초나라 노래를 불러 항우의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를 꺾었다. 한나라 군영에서 울려 퍼지는 고향노래를 들은 초나라 군사들은 집 생각에 싸울 의지를 잃고 허망하게 무너졌다.
손자는 손자병법에서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아니라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했다. 아무리 최신식 무기로 무장한 군대라도 강한 정신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오합지졸과 다를 바 없다. 총 한 발 쏘지 않고 적의 전투 의지를 꺾는 심리전이야말로 비용 대비 효과가 가장 큰 전술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이 비무장지대에 설치된 대북 확성기를 겨냥해 무모한 포격 도발을 자행했다. 군이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에 따른 보복 조치로 11년 만에 재개한 대북 확성기 방송은 우리 기준으로 봤을 때 “이런 게 무슨 심리전이야”라고 할 정도로 특이한 내용이 없다고 한다. 물론 북한 정권의 치부를 드러내는 민감한 내용도 있지만 일기예보 같은 소소한 것에서부터 남한의 소식과 노래 등 장르가 다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처음엔 반신반의하다가도 신통하게 일기예보가 딱딱 들어맞는 걸 보고 대북 확성기 방송이 터무니없는 얘기는 아니라고 여기는 북한 주민들이 적지 않단다. 북한이 허겁지겁 “대북 확성기 방송은 선전포고다. 중단하지 않으면 군사적 행동을 하겠다”고 과민반응하는 이유를 알 만하다. 체제 유지에 자신이 있으면 대북 확성기 방송을 두려워할 까닭이 없다. 김정은 정권이 대북 확성기 방송만 막으면 북한 주민의 눈과 귀를 영원히 막을 수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한마당-이흥우] 대북 확성기 방송이 두려운 김정은
입력 2015-08-22 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