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은 빠르게 공들이지 않고 그려졌다는 이유로, 혹은 완성된 작품 밑에 감춰야하는 밑그림 정도로 폄하돼왔다. 그러나 드로잉에 쓰이는 연필, 콘테, 색연필 등은 물감이나 먹 등 다른 재료가 가질 수 없는 고유한 물성이 있다.
서울 종로구 갤러리룩스가 이런 드로잉의 매력에 주목한 30대 여성 작가 4명의 작품을 한데 모아 ‘실패하지 않는 그림:드로잉’전을 갖고 있다.
이화여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강성은 작가는 연필의 힘을 재발견했다. 연필 선을 무수히 그어 면이 쌓이는 과정에서 어떤 매체도 대체할 수 없는 깊은 밤의 느낌이 포착됐던 것이다. 밤 풍경에 내재된 어두움과 숭고함이라는 이중적 감각을 검은 연필선과 그것이 반사되는 순간으로 구현한 작품들이 다수 나왔다.
서울대 조소과를 나와 독일에서 활동 중인 성민화 작가는 잉크로 세밀하게 그린 집의 풍경을 여러 점 내놓았다. 잉크의 경쾌한 선을 통해 건축물에 켜켜이 쌓인 세월의 주름과 흔적이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효과를 낸다. 신라대 서양화과 출신의 이선경 작가는 색연필 혹은 콘테를 택했다. 여성의 상처 받은 내적 불안함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 연필보다 물러 농담 표현이 가능한 이들 재료는 질감을 잘 살리고 있다.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나온 허윤희 작가의 목탄 작업은 일견 먹 그림 같다. 하지만 ‘나무’ 연작에서 보듯 목탄으로 그린 후 이를 지워내 자국을 남기고 다시 그 위에 그려가면서 만들어지는 층(레이어)은 수묵으로는 거둘 수 없는 회화적 깊이감을 낸다. 심혜인 관장은 “드로잉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준다. 드로잉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9월 20일까지(02-720-8488).
손영옥 선임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드로잉의 매력
입력 2015-08-24 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