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다큐 영화 ‘위로공단’ 임흥순 작가 “개인史, 공적 역사의 출발이라고 생각”

입력 2015-08-24 02:18
‘위로공단’의 스크린 수는 고작 32개다. ‘암살’의 개봉일 스크린 수가 1260개가 넘었던 것에 비하면 베니스비엔날레 은사자상 수상작에 대한 사회적 홀대다. 하지만 임흥순 작가는 지난 17일 국민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다. 현실에 불만을 갖기보다 최선을 다해 영화를 알리고 싶다”면서 “주말에도 쉬지 않고 상영관을 찾아 관객과 대화 시간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병주 기자
‘위로공단’에 등장하는 임흥순 작가의 어머니. 작가는 “어머니의 밝고 긍정적인 모습에서 서민의 힘을 느꼈고, 그런 덕분에 한번도 가난이 창피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5월 1일 메이데이 서울시청 집회 모습. ‘서비스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글귀를 부착한 마네킹이 90도로 인사하는 이 장면은 감정노동자의 현실을 아프게 고발한다.
1998년, 군 제대 후 늦깎이로 입학했던 경원대 미대 대학원 시절이다. 미대에서 비디오카메라를 구입했다. 그걸 빌려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 봉제공장에서 평생 ‘시다’(보조)로 일해 온 어머니 일터를 찾았다. 아들의 카메라 앞이라 그랬을까. 선풍기 몇 대로 여름을 나는 좁고 시끄러운 그곳에서 어머니의 동작은 그날따라 가볍다.

임흥순(46) 작가의 다큐멘터리 영상작품 ‘위로공단’이 지난 13일 개봉됐다. 5월 초 베니스비엔날레 미술전에서 한국 최초의 은사자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지 3개월 만에 대중과 만난 것이다. 시간적으로 구로공단 ‘공순이’에서 콜센터 직원 등 감정노동자까지 40여년 노동의 변천사를, 공간적으로는 저임노동을 좇는 자본의 궤적을 따라 캄보디아·베트남까지로 무대를 확장한 이 작품은 심사위원단으로부터 “아시아 여성 노동자들의 불안정한 노동조건의 본질을 섬세하게 그려낸 영상”이라는 극찬을 들었다. 공식 제작기간 3년. 그러나 예비작가 시절 찍은 어머니 영화에 등장한다는 점에서 작가 인생 17년이 녹아 있다. 개봉 5일째이던 지난 17일 그를 여의도 국민일보 본사에서 만났다.

-어머니가 영화를 보셨나.

“어제 보고 오셨다. 예전에 찍은 것도 기억 못하시더라. ‘잘 찍었네, 내 아들, 고생했다’며 자랑스러워하셨다. 공장에서 일했던 친구 분들과 또 보러 가시겠다고 하시더라(그의 어머니는 3년 전 대상포진이 악화돼 봉제공장 일을 그만뒀다).

-가족사를 사회사, 세계사로 확대하는 작업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회화 작업을 할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아 고구려 벽화 등 과거에서 소재를 찾았으나 피상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가장 가까운 역사는 가족이라 생각한다. 공장에서 일하는 어머니, 막노동을 끝내고 쉬는 아버지가 화폭에 들어왔고, 이것은 영상매체 작업을 하면서도 지속됐다. 개인사야말로 공적 역사의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왜 미술작업으로 영화를 하게 됐나

“대학 때부터 미술이 삶과 떨어져있지 않고 삶에 도움이 되었으면 했다. 1980년대 민중미술이 눈에 들어오더라. 그걸 우리 세대가 어떻게 이어갈까 찾았을 때 비디오카메라가 답이 됐다. 미술처럼 덧칠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 좋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심리에 관심이 갔는데, 그걸 표현하는데도 영화가 맞더라.”

-평론가 유운성씨는 “역사가 그저 지나가는 풍경으로 변하는 걸 막으려는 의지가 느껴진다”고 했다. 그게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수 있는 지점일 수 있다(영화에는 1978년 동일방직 오물투척사건, 1979년 강제진압과정에서 여성 노동자 1명이 사망한 YH무역사건, 2005년 7월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로 촉발된 기륭전자 사태 등 현대사의 아픈 기록들이 담겨있다).

“상업영화와의 차이점이 아닐까. 힐링이 되고 즐거움을 얻는 영화도 필요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보고 싶지 않아도 봐야할 부분은 있다. 망각했던 것, 하찮게 생각했던 것, 피하고 싶었던 것들을 드러내서 천천히 생각하게 하는 게 내 작품이었으면 한다”(영화는 인터뷰의 힘을 보여준다.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인터뷰이의 감정이 그들의 표정, 몸짓, 손짓, 눈빛을 통해 스크린 밖으로 생생히 전해진다. 예컨대 손님이 던지는 신용카드를 어쩔 수 없이 주워서 긁어할 때의 굴욕감을 얘기하는 마트여직원의 말투와 표정은 감정노동자의 고단한 현실을 단 몇 초로 전달한다).

-인터뷰를 따기 위해 6개월을 기다린 적도 있다고 들었다. 인터뷰할 때 뭘 중시하나.

“그냥 듣는 거다. 편안하게 얘기하실 수 있게 진심으로 듣는 것이다. 작품을 만들기 위해 인터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얘기에 공감하고 싶었다. 작업을 못하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나.

“예상 밖으로 젊은층이 많이 봐서 반갑다. 젊은 세대가 부모님 세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관심이 없는 거 아닌가 걱정했었다. 이런 게 우리 사회의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과거를 알아야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제 영화를 보고 나서 ‘엄마의 20대는 어땠어?’라고 한번 물어봐준다면 더 바랄게 없겠다. 위로 받고 싶어 보는 영화가 아니라 남을 위로하게 만드는 영화였으면 한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