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빠르기와 방향성

입력 2015-08-22 00:10
지구 자전과 별 일주운동. 위키커먼스

빛은 초당 30만㎞의 엄청난 속력을 지닌다. 빛이 지구에서 출발해 달까지 이르는 데는 단 1.3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1년이 지나면 제자리로 돌아오는 지구의 공전 속도는 30㎞/초이고 자전 속도는 465m/초이다. 소리의 속력이 340m/초이니 지구의 자전 속도 역시 매우 빠른 것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런 빠른 속도감을 느끼지 못하는데, 이는 자전운동이 등속운동이기 때문이다.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면 초기엔 움직임을 느끼지만 일정 시간 이후 정지된 듯한 느낌을 받는 이치와 같다.

위에서 사용된 속력과 속도라는 용어는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속력(speed)은 이동 방향을 고려하지 않는 스칼라량으로 실제 이동한 전체 거리를 시간으로 나눈 값으로 표현된다. 즉 방향과 무관하게 물체가 지나간 동선거리에 기초한 속력은 물체의 빠른 정도를 표현하는 용어다. 속도(velocity)는 물체의 빠르기를 이동한 방향(변화된 위치)과 함께 나타낸다는 점에서 속력과 차이가 있다. 처음 위치와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물체의 최종 위치 간 직선거리를 시간으로 나누어 계산한다. 즉 속도는 속력과 같이 크기를 지닐 뿐만 아니라 방향성도 지니는 벡터량으로 정의된다.

스칼라량이란 크기만 있고 방향이 없는 양을 의미하고 벡터량은 크기와 방향을 가진 양을 뜻한다. 예를 들어들어 자동차가 60㎞ 거리를 50분 동안 이동한 후 10분간 갔던 길 15㎞를 되돌아왔을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경우 속력은 75㎞/시간(60분간 총 75㎞ 이동)이고 속도는 45㎞/시간(60분간 실제 45㎞ 이동)이 된다. 이때 전자는 스칼라량, 후자는 벡터량이 된다.

올해로 광복 70주년이다. 그간 우리는 놀라운 속력으로 1인당 국민소득 2만8000달러, 세계 13∼14위 규모의 경제 발전을 이뤘다. 그러나 압축적 경제 발전과 함께 나타난 사회적, 환경적 문제도 적지 않다. 우리가 등속운동처럼 행한 개발중심 정책에 익숙해져 타 영역에서의 후퇴나 답보에 둔감해진 측면도 있다. 전진과 후퇴를 반복한 사회, 환경 영역도 이제는 살펴봐야 한다. 단순한 스칼라량의 속력이 아닌 속도라는 벡터량의 시각으로 우리의 성장과 방향을 짚어야 할 때다.

노태호(KEI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