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고구려의 궁예는 신라의 국운이 기울자 철원 지방을 근거지로 나라를 세워 천명을 받은 사람이라고 자처했습니다. 하지만 나라의 기틀이 잡히기도 전에 백성들의 현실을 뒤로한 채 사치와 방탕을 일삼았습니다. 백성을 돌보지 않는 것은 곧 천명을 거역하는 것이니 어찌 오래 지탱할 수 있었을까요. 궁예는 결국 부하 왕건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비참한 최후를 마쳤습니다.
본문은 순리를 거역하고 역리의 시대를 사는 요즘에 다시 한 번 곱씹게 하는 구절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섭리에 순응하며 살고 있을까요. 순응은커녕 불응의 극치를 이룬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 아닐까 싶습니다.
진리가 아닌 것에 인생을 허비하고 진리를 거부하며 우주의 이치를 거슬러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는 시대입니다. 윤리적으로 타락해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순결을 짓밟는 죄악이 만연한데도 양심에 거리끼지 않는 이들을 보면 분명 세상은 역리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국방의 의무를 수행해야 할 수장들이 방산 비리에 연루되고 제자에게 인분을 먹이며 상습적으로 괴롭힌 교수가 수사받는 걸 보면 정말 말세란 말이 절로 나옵니다. 그런 일을 저지르고도 교수 행세를 하며 연구비까지 받았다고 하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련의 사건들은 패역한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달나라를 정복하고 우주 연구도 진일보했지만 현대 문명은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찾기에 역부족인가 봅니다. 이기주의와 탐욕이 팽배한 세상에서 숭고한 가치는 값비싼 물건보다 못하게 됐습니다. 동서남북 어디를 돌아봐도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교회는 이러한 세상에서 자유롭습니까. 대한민국 건국 이후 개신교는 교육, 민주화 부분에 기여했습니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들이 괄목할만한 자본주의 발전을 이룩한 데 있어 개신교적 가치관이 기여한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세상과 교회의 가치관이 다를 바 없어진 현실에서 교회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한국교회는 이제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방관자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가 계속 방관자로 있다면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말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이미 그러한 현실에 직면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대형 세미나에 나서는 강사들은 한결같이 한국교회의 위기를 말합니다. ‘위기는 기회’라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이야말로 교회가 ‘순리가 역리가 되어 버린 현실’을 제자리로 돌리는 작업을 서둘러야 할 것입니다.
어느 철학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현인(賢人)이란 인생의 도리를 따르는 자입니다. 반면 우인(遇人)은 인생의 도리를 거역하는 자입니다.”
철학이란 무엇입니까. 인생의 도리를 배우는 것입니다. 도덕이란 무엇입니까. 인생의 도리를 행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종교란 무엇입니까. 인생의 도리를 믿는 것입니다. 주님의 순리대로 바로 사는 한국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선규 서울 금천교회 목사
[오늘의 설교] 순리를 버린 세대
입력 2015-08-22 0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