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구의 영화산책] ‘베테랑’과 그리스도인의 자존감

입력 2015-08-22 00:18
영화 '베테랑'의 한 장면.
“진짜 쪽팔린 게 뭐였는지 알아? 샤넬백 보니까 흔들리더라. 잘 살지는 못하더라도 쪽팔리게는 살지 말자!”

광역수사대 형사 서도철(황정민)의 아내는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자신에게 접근한 최상무(유해진)가 샤넬백 속에 5만원짜리를 가득 채워온 것에 대해 분노하며 남편에게 쏘아 붙였다. 그녀는 분명 자존감이 높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공직에 있는 사람의 아내로서 또 사회의 약자를 돕는 사회복지사로서 높은 자존감을 갖고 있지 않다면 돈의 유혹을 견뎌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올해 여름 한국 영화 팬들의 속을 시원하게 풀어준 영화 ‘베테랑’은 우리 시대의 자존감에 대해 얘기한다. 국제정신분석가인 이무석 교수는 자존감이 자신을 가치 있는 사람으로 평가하는 자기가치감(self-worth)과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잘 해낼 수 있다고 믿는 자신감(self-confidence)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한다. 서도철 형사는 영화 속에서 이 두 가지 기준에서 자존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무엇을 해도 괜찮다는 안하무인격의 조태오는 우리가 언론을 통해 알게 된 한국 재벌가들의 몰상식적인 행동을 모조리 하는 인물이다. ‘야구방망이 구타 사건’에서 ‘땅콩 회항’에 이르기까지. 돈이면 뭐든지 다 된다고 여기고 힘없는 서민의 인격을 모독했던 재벌가 자녀들의 작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분명 잘못된 행동이지만 돈과 권력을 이용해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현실에서 서민들은 엄청난 분노와 상처를 입고 살아야 했다.

누군가는 죄를 얘기하고 잘못을 깨닫게 도와줘야 하건만 나서는 이가 없다. 영화 ‘베테랑’의 서도철 형사는 돈과 권력 앞에 무너지기 쉬운 현실에서 ‘그래도 이런 사람 하나쯤 있어야 되지 않겠냐’는 감독과 관객의 뜻이 맞아 탄생한 자존감 높은 서민의 영웅이다.

서도철의 자존감은 우리 시대 그리스도인이 결코 잃어서는 안 될 자존감이기도 하다. 첫째, 권력 앞에서 죄를 말할 수 있는 용기는 높은 자존감을 가진 그리스도인의 행동 양식이다. 서도철은 형사라는 자신의 신분에 따라서 조태오가 범죄자임을 명확하게 밝힌다. 경찰 역사상 아무도 건드린 일이 없다는 재벌의 후계자에게 서도철이 “내가 죄짓고 살지 말라 그랬지?”하며 호통치는 장면은 나단 선지자가 다윗 왕에게 범죄사실을 알리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삼하 12:1∼12). 조태오는 서도철에게 “나한테 이러고도 뒷감당할 수 있겠어요?”라고 반문한다. 죄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은 공의로운 심판자인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바탕 위에 형성된 것이다(욥 8:3).

둘째, 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신분(벧전 2:9)에 따른 명예를 지키는 사람이야말로 자존감 높은 신앙인이다. 서도철 형사의 자존감은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수갑 차고 다니면서 가오 떨어질 짓 하지 말자!”는 그의 명언에 함축돼 있다. 가오(かお)는 일본말로 ‘얼굴’을 뜻한다. 경찰이라는 얼굴은 법 집행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때 바로 설 수 있다.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정의를 실현하는 경찰의 얼굴은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다. 그리스도의 향기이며 그리스도의 편지로 세상에 나가는 그리스도인. 이 그리스도인의 가오는 어디에서 비롯될까. 신앙인에 걸맞는 삶에서 비롯된다. 우리 삶에 우리의 자존감이 달려있다.

강진구(고신대 국제문화선교학과교수·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