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육정책 ‘조변석개’… 보따리 싸는 선생님들

입력 2015-08-21 03:01 수정 2015-08-21 10:17

김모(35·여) 교사는 ‘반쪽짜리’ 환경선생님이다. 환경교육을 전공하고 2003년 대구에서 교편을 잡았는데, 지난해부터 한 고교 부설 학습원의 체험관에서 친환경 수업을 맡고 있다. 선택과목인 환경을 채택한 학교가 대구에서 ‘멸종’한 탓에 설 자리가 없어졌다.

2013년부터 대구교육청이 “국·영·수·역사 중 하나를 골라 과목을 바꾸라”고 채근했지만 김 교사는 환경을 고집했다. 대구교육청은 어쩔 수 없이 그를 체험관 교육 담당자로 채용했다. 김 교사는 20일 “학교로 돌아가 정식으로 환경을 가르칠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멸종 위기’ 선택과목 교사들=1992년 제6차 중등교육과정 선택과목에 ‘환경’이 신설되자 교련·무용 등 사라지는 과목 교사들이 전공을 환경으로 돌렸다. 2000∼2008년 환경교육을 전공한 환경교사 70명이 신규 임용됐다. 이명박정부는 과목 명칭을 ‘환경과 녹색성장’으로 바꾸고 ‘환경교육진흥법’을 제정했다. 2010년 ‘환경교육 종합계획’까지 수립했다.

하지만 현장은 거꾸로 달렸다. 입시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환경을 택하는 학교가 줄었다. 현재 전국 중·고교의 10% 정도만 환경을 가르친다. 2008년 2883명이던 환경교사는 지난해 293명으로 급감했다. 2009년 이후 새로 임용된 환경교사는 없다. 대구대는 올해 환경교육과 신입생을 받지 않았다.

환경교사들은 수요를 웃도는 ‘과원(過員)교사’로 전락했다. 각 교육청에서 과원교사들에게 부전공·복수전공 연수를 받고 과목을 바꾸도록 권하자 대다수는 자의반 타의반 생물이나 진로담당 교사로 돌아섰다.

제2외국어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독일어·프랑스어·스페인어 자격증을 가진 교사는 각각 246명, 197명, 29명이었다. 하지만 실제 일반계 고교에서 이들 과목을 가르친 교사는 각각 56명, 93명, 21명에 그쳤다. 독일어 교사 A씨(43)는 “영어·중국어로 옮기거나 전공을 유지하기 위해 서너 학교를 전전하는 순환교사가 되곤 한다”고 말했다.

◇입시 입맛 따라, 교육정책 따라 ‘들쭉날쭉’=교사들이 ‘보따리장수’ 신세가 된 것은 오락가락하는 교육정책 때문이다. 입시 만능주의는 ‘선택교과의 멸종’을 부추긴다. 신경준 한국환경교사모임 공동대표는 “수능·내신과 무관한 선택교과들을 시간표에만 넣어 두고 노골적으로 국·영·수 자습시간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안’에 중학교 자유학기제 전면 시행, ‘정보’ 과목 필수화, 고교 진로선택과목 추가 등이 담기면서 비인기 선택과목은 벼랑 끝에 몰렸다. 김 교사는 “관리자와 학부모는 당위성을 가진 한문·중국어에 비해 환경 과목에 매력을 못 느낀다. 선진국은 정규 과목으로 확대 편성하는데 우리는 ‘쓰레기 줍는 교육’으로 여긴다”고 했다.

‘교사 돌려막기’의 폐해는 학생에게 미친다. 어쩔 수 없이 과목을 옮긴 교사들은 6개월 연수로 광범위한 전공과목 공부를 마무리한다.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바로 투입되는 셈이다.

스포츠 강사, 영어회화 전담 강사, 상담교사 등도 정책에 따라 춤을 춘다. 비용 문제에 부닥친 교육 당국이 내부 인력을 활용하는 쪽으로 눈을 돌리면서 비정규직인 이들은 일자리를 잃고 있다. 정부는 2008년 체육수업 활성화를 위해 전문 스포츠 강사를 초등학교 체육 담당으로 채용했다. 하지만 2013년 체육전담 교사를 확충키로 방향을 바꾸면서 이들은 학교를 떠나야 할 위기에 놓였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