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왕궁 부엌터 익산서 첫 발견… 왕궁리 유적 서남쪽 일대서 철제솥 2점·숫돌 등 발견

입력 2015-08-21 02:35
익산 왕궁리 유적 서남쪽에 붉은 흙이 드러난 부분(빨간 선)이 발굴조사 현장이고, 그 옆 사진이 백제 왕궁의 부엌으로 추정되는 건물지다. 오른쪽 아래 사진은 부엌터 구덩이에서 나온 철제 솥 2점.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제공

전북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 백제 왕궁의 부엌터가 발견됐다. 삼국시대 왕궁터에서 부엌으로 보이는 건물지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왕궁리 유적 서남쪽 일대에서 진행한 발굴조사에서 왕궁의 부엌으로 추정되는 동서 6.8m, 남북 11.3m 규모의 건물지를 찾아냈다고 20일 밝혔다.

부엌 건물지 내 타원형 구덩이에서는 철제 솥 2점이 나왔다. 철제 솥은 바닥에 원형 돌기가 있고 어깨에 넓은 턱이 있으며 아가리는 안쪽으로 살짝 휜 형태다. 어깨가 넓은 항아리 2점, 목이 짧고 아가리가 곧은 항아리 1점, 목이 짧은 병 2점 등 토기 5점과 숫돌 3점도 함께 발견됐다. 토기 중 일부에서는 안에 액체가 담겨 있었던 흔적이 확인됐고 구덩이 옆에는 배수로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구덩이에서 2m 떨어진 지점에서도 철제 솥이 출토됐으며 불탄 흙과 그을린 흔적이 남아 있는 벽체, 많은 숯이 깔린 장소 2곳도 나왔다.

심정보 문화재위원회 위원은 “건물군 안에 독립된 부엌이 있었던 곳은 궁궐과 사찰뿐”이라며 “이 부엌에서는 식자재를 씻고 음식을 조리하고 설거지하는 일련의 과정이 모두 이뤄졌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국시대는 물론 통일신라시대를 통틀어 왕궁의 부엌이 발견된 것은 처음이라 주목된다. 왕궁의 부엌에 대한 명칭으로 ‘수라간’이 고려 이후 쓰였으나 그 이전 시대에는 명칭조차 알려져 있지 않다. ‘삼국유사’에 사찰의 주방을 뜻하는 용어로 ‘주(廚)’가 전해질 뿐이다.

이은석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실장은 “삼국시대에는 왕궁의 부엌에 대한 기록이 없다”면서 “이번에 확인된 부엌 건물지의 위치와 내부 구조, 시설을 면밀히 분석하면 삼국시대 왕궁 부엌의 실체가 드러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부엌터 외에도 화장실로 추정되는 기다란 형태의 석출시설, 기와 가마터 등 여러 건물지가 발굴됐다. 특히 서쪽 담장을 따라 길이 29.6m, 너비 4.5m 규모로 남북으로 길게 조성된 건물터가 주목되는데, 이 같은 건물 구조와 배치는 일본 오사카의 난파궁이나 나라의 아스카궁에서도 나타나고 있어 백제 궁성 축조 형식이 일본에 전파됐음을 밝힐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공주·부여의 백제 유적지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왕궁리 유적은 백제 후기 무왕 시절 조성된 왕궁성으로 알려졌으며 1989년부터 매년 발굴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그동안 궁성과 궁장(궁궐 담장), 정원, 공방터 등이 발견됐고 인장 기와와 연화문 수막새 등 유물 1만여점이 출토됐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