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명숙 전 총리의 유죄가 부끄럽고 아픈 까닭

입력 2015-08-21 00:40 수정 2015-08-21 09:44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새정치민주연합 한명숙 의원이 20일 대법원의 유죄 판결로 의원직을 잃었다. 대법원은 한 의원이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세 차례에 걸쳐 9억원을 받은 혐의를 인정, 징역 2년 등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번 재판은 무죄를 선고한 1심과 징역 2년을 선고한 2심의 판결이 달랐고, 대법원 판결 또한 8대 5로 갈릴 정도로 한 의원 측과 검찰의 법리 대결이 치열했다.

어쨌든 최종 판결은 내려졌고, 불복할 방법도 없다. 대법원 확정 판결로 한 의원은 2년간 수감생활을 한 뒤에도 10년간 공직선거에 출마할 수 없어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났다. ‘대한민국 첫 여성 총리’, ‘제1야당 대표’라는 명예를 뒤로하고 ‘비리 정치인’으로 낙인찍혀 쓸쓸히 정치무대에서 퇴출되는 순간이다.

한 의원은 선고 후 “공정해야 할 법이 정치권력에 휘둘려버리고 말았다”며 대법원 판결을 강하게 비판했다. 문재인 대표도 “검찰의 정치화에 이어 법원까지 정치화됐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가세했다. 정치인으로서 법원 판결에 정치적 비판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야당 주장대로 대법원이 정치적 판결을 했다면 그 증거를 제시하는 게 올바른 순서다. 비판에 앞서 자기반성이 선행됐어야 그나마 동정심이라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 의원 외에도 정치자금법 위반이나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대법원 및 하급심 판결을 기다리는 현역의원이 9명이나 된다. 새누리당 송광호 조현룡 의원은 철도비리 사건으로, 새정치연합 김재윤 신계륜 신학용 의원은 입법로비 사건으로, 새누리당 이완구 박상은 의원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이다. 분양대행업체 대표로부터 3억5000여만원 상당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최근 구속된 무소속 박기춘 의원도 곧 재판에 회부될 예정이다. 너무 쉽게 불법 정치자금의 유혹에 빠지는 한국정치의 비극이다.

국회의원들이 검은 돈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근본 원인은 의원 개인의 자질도 문제지만 정치하는데 많은 돈이 들기 때문이다. 정경유착 고리를 끊는 것 못지않게 고비용 정치구조를 바꾸는 제도 개혁이 병행돼야 비리를 줄일 수 있다. 한국 정치의 부끄럽고 아픈 사연은 대체 언제나 끝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