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최범선] 듣는 지혜

입력 2015-08-21 00:05

다양한 정보를 쉽게 얻고 공유할 수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우리는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는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가족은 표면상으로는 서로를 잘 아는 공동체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정 안을 들여다보면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부부 간에 갈등을 빚는 사례가 많으며 부모와 자식간에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잦다.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난 형제자매 간에도 서로를 잘 알기에 이해하고 좋은 관계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은데 오히려 의사소통을 하지 못해 남보다 더 불편한 관계로 살아가는 사례를 우리는 흔히 볼 수 있다.

가정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며 친숙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오히려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친한 친구 사이에서도 종종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힘들어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으며, 한 직장에서 근무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의사소통을 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군대에서도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문제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왜 우리는 의사소통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걸까. 어쩌면 듣는 훈련이 돼 있지 않기 때문에 의사소통에 실패한다는 생각이 된다. 구약성경 사무엘상 15장 22절에는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적혀 있다.

하나님께서 그 어떤 제사나 제물보다 순종이, 듣는 것이 낫다고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성경에서 순종이라고 번역된 단어의 본뜻은 ‘듣다’ ‘경청하다’ 등이다.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 듣는 일, 경청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셨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기 위해서는 듣는 일, 경청하는 일이 먼저라는 것이다.

서로 잘 알고 지낸다고 여기는 관계일수록 경청하는 일이 중요해진다. 같은 집에 사는 아내여서, 남편이어서, 자녀여서 그들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허투루 넘긴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 자란 형제나 자매 역시 마찬가지다.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기에 앞서 서로의 말을 경청해 주는 일이 필요하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같은 목표를 좇는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도 서로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는 태도는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매일 본다고, 같은 공간에서 살고 있다고 서로를 잘 안다고 과신하면서 경청하는 일에 소홀하다 보면 오해와 불신만 쌓이게 된다. 오해와 불신은 언젠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우리는 처음에는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는데 사소한 오해가 쌓여 갈등과 아픔을 겪는 경우를 보게 된다. 서로의 생각과 말을 경청하는 일을 충분히 했다면 아무런 문제없이 지낼 수 있었던 일인데 서로에 대한 안일한 태도가 문제가 된 경우가 많다. 상대방의 생각과 말을 경청하지 않으면 오히려 왜 나를 이해하지 못하느냐는 불만을 쏟아놓게 된다. 자신의 입장만 강요하는 일도 빈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 상대방의 생각과 말을 먼저 듣고, 경청하는 지혜를 통해 의사소통을 이루어 아름답고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최범선 목사(용두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