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부희령] 밀항

입력 2015-08-21 00:20

몇 년 전 모로코 탕헤르에서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스페인으로 가는 페리를 탄 적이 있다. 내가 타고 있는 리무진 버스가 페리 선착장으로 들어가기 직전 모로코 경찰들이 버스를 세웠다. 버스 기사가 차에서 내리더니 긴 막대기를 들고 차 밑을 마구 휘저었다. 그러자 작고 마른 아이 한 명이 튀어나왔다. 나로서는 언제, 그리고 버스 밑 어느 곳에 그 아이가 들어가 앉아 있었는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어쨌든 아이는 튀어나왔고, 경찰들은 호루라기를 불었고, 버스 기사는 긴 막대기로 차 밑바닥을 여러 번 다시 휘저었다. 버스 안에 있던 승객들은 기사가 있는 쪽 창문에 붙어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또 다른 아이 하나가 차 밑에서 튀어나왔다.

스페인으로 밀입국하려는 아이들이었다. 아이들 대부분은 에티오피아나 소말리아, 팔레스타인에서 온다고 한다. 내전 혹은 대리전이 지속되고 있는 전쟁터로부터, 기아와 학살과 고문으로부터 달아나는 것이다. 아이들은 리비아 사막을 거쳐 튀니지, 모로코까지 온 뒤 마지막 관문으로 해협을 건넌다. 운이 좋아 간신히 유럽 대륙으로 들어간다 해도 어느 곳에서도 자리를 잡기는 힘들다. 스페인에서 프랑스로, 영국 혹은 독일로, 좀 더 형편이 낫다는 북쪽의 어느 나라로 떠밀려간다. 다시 출발점으로 돌려보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나는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어 사진을 찍거나, 혀를 끌끌 차며 가엾어 하거나, 우리도 예전에는 일본이나 미국으로 밀항하려 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고작 열 살 남짓한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미지의 세계로 제 몸을 던지는 인류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작고 민첩한 몸, 제거해야 할 장애물로 취급되는 몸, 이유도 모르는 채 고통 속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피가 흐르고 있는 몸들을 지켜보면서 나는 중얼거렸다. 달아나라. 멀리, 더 멀리. 막대기에 걸리지도 말고, 바다에 빠지지도 말고, 경계를 넘어서서, 군인이나 경찰, 관광객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가라, 살아남아라, 부디.

부희령(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