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고가 대입에서 특목고와 자율형사립고(자사고) 등의 들러리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이 좋은 학교 50곳을 살펴보니 특목고와 자사고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일반고는 상위 50곳에 사실상 1곳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교육 당국의 ‘일반고 살리기’ 구호가 무색해진 결과다.
오랫동안 강세를 유지해 왔던 외국어고의 성적은 하락한 반면 자사고와 국제고의 성적은 뛰었다. 입시 전문가들은 청년 실업이 심각해지면서 빚어진 ‘이공계 선호 현상’으로 이과 비율이 높은 자사고나 국제고로 우수한 학생들이 몰리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구호만 요란한 ‘일반고 살리기’=교육부는 19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에 ‘2015학년도 수능 고교별 성적자료’를 제출했다. 국어·영어·수학 3개 영역(국어 A/B, 수학 A/B, 영어)의 평균 2등급 이상 비율이 높은 고교를 분석한 결과 상위 50개 학교의 대부분이 특목고와 자사고였다(표 참조). 외고가 21곳으로 가장 많았고 자사고 9곳, 국제고 6곳, 과학고 4곳, 자율형공립고(자공고) 2곳이었다.
일반고로 분류된 학교는 8곳에 불과했다. 충남 공주시 한일고(4위)·공주대부설고(14위), 경남 거창군 거창고(26위), 경기도 용인시 수지고(35위), 경기도 광명시 진성고(39위), 경북 안동시 풍산고(41위), 경기도 양평군 양서고(47위),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고(50위) 등이다.
이 학교들은 교육 당국이 일반고로 분류했지만 사실상 ‘무늬만 일반고’다. 이들 학교는 전국 혹은 광역시·도 단위에서 학생을 선발할 수 있다. 평준화 지역에서 고전하고 있는 통상적 의미의 일반고로 보기 어렵다. 한일고·거창고·풍산고 등은 전국 단위, 공주대부설고 등은 광역시·도 단위에서 학생을 뽑고 있다. 수지고와 진성고는 최근 선발권이 없어졌지만 2015학년도에 수능 시험을 치른 학생들은 과거 선발권을 가지고 있을 때 입학했다. 또 수험생들이 기숙사에서 합숙하고, 교육과정 운영 등에서 자율성을 보장받고 있어 대입에서도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는 학교들이다.
지난해 수능 응시자가 있었던 전국 고교는 1596곳이었다. 이 가운데 일반고가 1348곳(84.5%)으로 대다수를 차지했지만 상위 50위권에는 명함도 내밀지 못한 셈이다.
서울만 놓고 보면 상위 10곳 중 일반고는 한 곳도 없다. 외고 5곳, 자사고 3곳, 국제고와 과학고 각각 1곳씩이었다. 상위 20곳으로 범위를 넓혀도 숙명여고(서울 13위)와 은광여고(서울 20위) 2곳만 이름을 올렸다. 강남·서초·양천구를 제외한 나머지 21개구에서는 단 한 곳의 일반고도 상위 50위 안으로 진입하지 못했다.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이 줄기차게 ‘일반고를 살려야 한다’고 했지만 구호에 그친 것이다.
◇외고 부진, 자사고·국제고 강세=전체 1위는 강원도 횡성군에 있는 자사고인 민족사관고가 차지했다. 수험생 80.1%가 2등급 이내였다. 경기도 용인 한국외대부설고(76.1%)가 2위였다. 이어 서울 광진구 대원외고(75.1%), 충남 공주 한일고(73.1%) 순이었다.
외고는 상위 50위 안에 21곳이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상위 10곳으로 좁혀서 보면 자사고와 국제고가 각각 4곳, 3곳으로 강세를 보였다. 외고는 대원외고와 김해외고 2곳뿐이었다. 대원외고를 제외하면 서울·수도권 외고 가운데 ‘톱10’에 이름을 올린 학교는 없었다. 반면 인천국제고(8위), 부산국제고(9위), 서울국제고(10위)는 눈에 띄는 성적을 거뒀다.
종로학원하늘교육 임성호 대표는 “외고는 과거와 달리 영어 내신 성적만으로 선발하면서 과거보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외고로 몰리지 않는다”면서 “외고의 성적 하락과 자사고·국제고의 부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에다 고질적인 청년 취업난도 자사고의 약진에 힘을 보태고 있다. 고교에서부터 취업에 유리한 이공계 선호가 두드러지면서 문과 비율이 높은 외고보다 이과 비율이 높은 자사고 등으로 우수한 학생이 이동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자사고 중에서 민사고와 용인외대부고에 이어 전북 전주 상산고(5위), 울산 동구 현대청운고(7위), 서울 은평구 하나고(12위), 부산 해운대고(37위), 경기 안산동산고(42위), 인천 하늘고(43위), 광주 숭덕고(49위)가 상위권에 자리를 잡았다.
자공고는 경기 오산 세마고와 충북 청주 청원고가 각각 44위와 48위에 이름을 올렸다. 과학고 중에는 한국과학영재학교(20위), 서울과학고(23위), 경북과학고(32위), 경기과학고(46위) 등이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17개 광역시·도별로 1위 학교를 보면 인천국제고, 부산국제고, 대구외고, 광주 숭덕고, 대전외고, 울산 현대청운고, 경기 용인외대부고, 강원 민사고, 경남 김해외고, 경북과학고, 전남과학고, 전북 상산고, 충남 한일고, 충북 청원고, 제주외고, 세종 도담고 등이 해당 지역에서 2등급 이내 비율이 가장 높았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수능 톱 50, 특목고·자사고 초강세 일반고는 사실상 한 곳도 없었다
입력 2015-08-20 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