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권은희(41·사진) 의원이 모해위증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에 연루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의 재판에서 “김 전 청장이 국정원 댓글 수사를 방해했다”는 내용의 허위 증언을 한 혐의다. 권 의원 진술을 유력한 증거로 내세워 김 전 청장을 기소한 뒤 상고심까지 갔던 검찰은 이제 와서 그 말이 거짓이라며 권 의원을 기소까지 하는 상황이 됐다.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검사 김신)는 19일 김 전 청장을 처벌받게 하려고 거짓 증언한 혐의로 권 의원을 불구속 기소했다. 모해위증죄는 단순히 사실에서 어긋난 증언을 한 것이 아니라 형사사건 피의자나 피고인에게 불이익을 줄 목적으로 기억에 반해 객관적 사실과 다르게 증언한 경우 적용된다. 법정형이 10년 이하의 징역이다.
권 의원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를 축소·은폐한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청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김 전 청장이 전화를 걸어 국정원 여직원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보류하라고 종용했다”는 등의 거짓 증언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권 의원은 댓글사건 수사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었다.
검찰 특별수사팀은 권 의원의 진술을 근거로 수사를 벌여 2013년 6월 김 전 청장을 공직선거법 위반과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김 전 청장은 1·2심에 이어 지난 1월 대법원에서도 무죄가 선고됐다. 보수 성향 시민단체들은 지난해 7월 권 의원을 고발했다.
검찰은 김 전 청장의 외압에 관한 권 의원의 주장이 객관적 사실과 확연히 다르다고 판단했다. 당시 압수수색 영장 신청을 보류한 것은 수사팀이 확보한 자료로는 소명이 부족했기 때문이며, 김 전 청장이 전화를 건 것은 보류 결정 몇 시간 뒤였다는 설명이다. 검찰 관계자는 “김 전 청장이 권 의원에게 전화를 건 것은 단순 격려 차원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검찰은 또 ‘서울경찰청이 임의로 국정원 직원 컴퓨터 분석 범위를 제한해 허위 결과를 도출했다’ ‘수서경찰서장이 김 전 청장 지시에 따라 성급히 보도자료를 배포한 일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등의 권 의원 주장도 모두 사실과 다르다고 봤다. 이는 기소 당시 특별수사팀이 내렸던 것과는 180도 다른 결론이다. 이번 판단대로라면 당시 검찰 수사가 특정인의 진술에 의존해 객관적 사실조차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았음을 자인하는 셈이기도 하다.
검찰은 지난달 30일 권 의원을 피고발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권 의원은 검찰에 출석하며 “수사 과정에서 은폐와 축소 시도가 있었다는 주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검찰의 모해위증 기소로 권 의원과 김 전 청장의 처지는 완전히 뒤바뀌게 됐다. 김 전 청장은 1년7개월 재판 끝에 무죄가 확정됐고, 외압 의혹을 폭로했던 권 의원은 이제 치열한 법정 공방을 시작해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적반하장’이라는 말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검찰 행태에 분노한다. 용기 있는 내부고발자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것은 검찰이 본분마저 내팽개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경원 정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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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희 믿다가… 檢 되레 ‘모해위증’ 기소
입력 2015-08-20 0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