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가 19일 이탈리아 ‘해킹팀’에서 유출된 400GB(기가바이트) 분량 자료에 대한 1차 분석 결과를 내놨다. 국내 KT 인터넷망 사용자의 개인 컴퓨터에 해킹 프로그램이 설치됐다는 의혹만 새로 제기했을 뿐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은 없었다. ‘IT 전문가’인 안철수 의원이 위원장을 맡아 진두지휘한 진상규명은 위원회 출범 한 달 만에 사실상 ‘용두사미’로 끝나는 모양새다.
안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국가정보원이 2013년 7월부터 8월까지 KT 망을 사용하는 개인용 컴퓨터를 대상으로 해킹 프로그램을 설치했거나 설치를 시도한 걸로 확인된 인터넷 프로토콜(IP) 주소 3개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그는 “새로운 IP 주소 3개는 국정원이 국내 인터넷 사용자를 대상으로 해킹을 시도했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위원회는 지난달 17일 출범한 이후 민간 전문가단을 구성해 한 달여간 해킹팀 유출 자료를 분석했다. 안 의원은 “내국인 사찰과 관련된 부분을 계속 찾고 있다”며 “찾은 걸 보여드리고 있고 찾아내면 발표하는 자리를 가질 것”이라고 했다.
위원회가 추가 의혹을 제기한다 해도 이는 정황증거에 불과하다. 해킹 대상과 목적,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해킹 프로그램 로그파일 분석이 필수다. 국정원은 기존에 제기된 비슷한 의혹들에 대해 “실험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의 IP 주소”라고 해명했다. 위원회는 이 해명을 깨뜨릴 ‘물증’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민간 전문가들도 ‘로그파일이 아니라 해킹팀 유출 자료만 분석하는 것은 장님 코끼리 더듬는 격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안 의원은 국정원의 자료 제출 거부에 대해 “당 차원의 제도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했지만 성과를 기대하긴 힘들다. 진상규명의 또 다른 축인 해킹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도 지지부진하다. 안 의원은 이날 “내국인 사찰 의혹의 중요한 증거가 자동 소멸될 수 있다”며 수사를 재차 촉구했지만 검찰이 신속하게 수사에 착수할 가능성은 낮다.
위원회는 진상규명 작업이 진척되지 않자 해킹 의혹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을 강조하고 나섰다. ‘출구전략’인 셈이다. 국회 정보위원회 여당 간사인 이철우 의원이 전날 국정원과 정보위의 동시 개혁을 새정치연합에 제안하면서 제도 개선 논의가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커졌다. 정보위원 자격으로 위원회에 참여한 문병호 의원은 “(이 의원이 제안한 대로) 당연히 그렇게 돼야 한다”고 했다.
안 의원은 그동안 문재인 대표 체제에서 당 혁신위원장 제안 등을 거절해 왔다. 하지만 해킹 의혹에는 직접 위원장을 맡는 등 의욕적으로 진상규명에 나섰다. 안 의원은 해킹 의혹 진상규명 과정에서 “주식 백지신탁까지 수용하겠다”는 ‘파격’ 제안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정적 증거를 찾지 못하면서 적잖은 상처를 입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
‘국정원 해킹 의혹’ 규명 결국 흐지부지?
입력 2015-08-20 0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