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노동자 시인, 자본의 논리에 길든 사회 경고

입력 2015-08-21 02:38
‘영원한 노동자 시인’ 백무산(60·사진) 시인이 아홉 번째 시집 ‘폐허를 인양하다’(창비)를 냈다. 1988년 ‘만국의 노동자여’로 어느 시인보다 급진적이고 전투적이라는 평가를 들었던 그다.

당시 시집에서 ‘밥은 계급적’이라며 ‘게으른 역사의 수레바퀴를 서둘러 움직일 수 있는’ 희망으로 표현됐던 노동자들은 새 시집에서 ‘자유를 반납하면 더 풍족한 삶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굴욕의 달콤함’에 젖은 존재로 전락했다.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노동자로 일했고 지금도 지역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그는 19일 국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1987년 민주항쟁 이후 한국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결국은 투쟁의 성과를 반납하고 노동이 자본에 포섭되었다”고 진단했다. “자본의 단맛에 길들여져 길을 잃었다”는 것이다.

시집 곳곳에는 그런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표출된다. 노동자들은 ‘공장 밖에 자유가 있으면 뭐해 밥이 없는데 밥이 자유지(중략)// 정규직 노예가 되고 싶다, 비정규직 노예를 철폐하라’(‘무엇에 저항해야 하는지는 알겠으나’)라고 외칠 뿐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길들여진 자본의 논리가 얼마나 위험한가는 세월호 참사가 말하며 시에서도 그 위험성을 경고한다. ‘최초에 명령이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가만 있으라, 지시에 따르라, 이 명령은(중략)// 모든 운항 규정은 이윤의 지시에 따르라’(‘세월호 최후의 선장’)

그런 경고가 새 시집이 갖는 힘인 것 같다. 그는 “인간 사회가 많은 진보를 이룬 것은 맞지만 인간성에 대한 진보는 이뤄지지 않았다”며 “우리 속의 야성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시집에 “생존을 위해 직립을 포기해야 하는”(호모 에렉투스), “인간의 쓰레기에 코를 받고 늑대를 벗어버린 개” (맹인 안내견) 등의 표현이 나오는 것은 야성을 촉구하는 반어적 비유일 것이다.

그렇다고 궐기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대신 우리가 놓인 삶의 비참함을 냉엄하게 응시할 것을 제안한다. 그것이야말로 이 시집 제목인 ‘폐허의 인양’이 갖는 의미라고 했다.

시인은 야성을 잃어버린 노동자들에게 실망감을 토로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민초가 갖는 힘에 대한 믿음의 끈을 놓지 않지 않고 보듬는다.

‘틈을 만드는 동안/갈라진 틈에 어디선가/깃털처럼 부드러운 풀씨가 찾아온다(중략)// 풀은 최선을 다해 흙을 만들어 덮는다’(‘풀의 투쟁’)

문학평론가 조정환씨는 “자본주의 사회의 정곡을 꿰찌르는 치열한 인식과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고뇌의 시선으로 당대의 삶이 직면한 한계와 가능성을 투시하는 시학”이라고 평가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