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출판사 마음산책의 정은숙(52) 대표는 신문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여름휴가에서 읽은 책들이 발표됐는데, 그 며칠 전 마음산책이 출간한 제임스 설터의 소설 ‘올 댓 이즈’가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제임스 설터는 한국에서 우리만 내는 작가였다. 우리가 좋아해서 열심히 내던 작가였고, 아무리 안 팔려도 계속 내겠다고 생각하던 작가였다.”
‘올 댓 이즈’는 마음산책이 출판한 설터의 네 번째 소설이다. 2010년 단편집 ‘어젯밤’을 시작으로 장편 ‘가벼운 나날’ ‘스포츠와 여가’에 이어 ‘올 댓 이즈’까지 마음산책 홀로 설터의 책들을 출간해 왔다.
그러나 한국 독자들은 좀처럼 설터와 친해지지 못했다. 설터는 국내에서 주로 작가나 비평가 중심으로 읽혀 왔다. 미국 문학계가 그에게 붙인 ‘작가들의 작가’라는 별명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6월 설터가 세상을 떠났을 때 뉴욕타임스는 그의 부고에 “판매는 저조했지만 오랫동안 상찬을 받은 ‘작가들의 작가’가 90살로 사망하다”라는 제목을 붙였다.
‘오바마가 읽은 소설’이라고 알려지면서 ‘올 댓 이즈’와 설터는 비로소 한국 독자들의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 SNS를 중심으로 ‘소설을 읽는 대통령이라니, 그것도 고전도 아니고 가장 핫한 현대소설을 읽는 대통령이라니, 멋지다’ 식의 평가가 퍼져나갔고, 책과 작가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설터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작품이 대통령과 함께 거명될 것이라고 상상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설터가 그리 대중적인 작가가 아닌데다 그의 소설들은 꽤나 에로틱하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올 댓 이즈’를 읽었다는 소식은 그래서 확실히 의외라는 느낌을 주는데, 그의 문화적 안목과 세련된 취향을 알려준다.
설터는 문장과 스타일로 평가받는 작가다.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 작가 리처드 포드는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 제임스 설터가 오늘날 미국 최고의 문장가라는 사실은 일종의 신념과도 같다”고 말했다. 미국 비평가 에드워드 허시는 설터를 인터뷰한 글에서 “그는 모든 것을 점검하고 재점검하고, 쓰고 고치고 다시 고친다. 문장이 윤이 나고 빛을 발하고 절대 허물어지지 않을 때까지”라고 썼다.
마침 16일은 마음산책이 창립 15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마음산책은 이를 기념해 ‘제임스 설터’를 표제로 한 20페이지짜리 타블로이드 신문을 발행할 정도로 설터를 알리는 데 공을 들여왔다. 정 대표는 “오바마가 창립 15주년을 축하하는 선물을 보내준 것 같아서 정말 행복했다”며 “많이 안 팔리더라도 좋은 책을 내겠다며 보내온 지난 15년에 대해 위로를 받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마음산책과 오바마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인도계 여성작가 줌파 라히리의 ‘저지대’ 출간을 준비하던 지난 2013년, 오바마가 추수감사절 연휴에 딸과 같이 동네서점에 들러 이 책을 사는 장면이 일제히 보도됐다. 줌파 라히리는 제임스 설터와 마찬가지로 마음산책에서만 출간하던 작가였고, 역시 대중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정 대표는 “줌파 라히리는 미국에선 너무 유명하지만 국내에서는 거의 무명에 가까운 상태였다”며 “줌파 라히리를 국내에 알리는데도 오바마의 덕을 봤다”고 말했다.
‘저지대’는 오바마가 이번 여름휴가에서 읽은 6권의 책 중 하나다. 오바마가 읽은 6권의 책 중 4권이 국내에 번역됐고 이 중 2권이 마음산책의 책이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 “휴가 때 소설 ‘올 댓 이즈’ 읽었어요”… 15돌 맞은 마음산책 “생큐, 오바마”
입력 2015-08-21 0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