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삶과 글의 향기를 좇는다… 동네 책방들 작지만 큰 꿈

입력 2015-08-21 02:31
김병록·백창화 부부


그동안 책을 둘러싼 얘기는 온통 비관론이었다. 그런데도 어디선가 자꾸 서점들이 생겨났다. 오래된 지역 서점들의 폐업 소식이 이어지지만 누군가는 또 새로운 서점을 열고 있었다. 이들은 누구인가? 왜 하필 서점을 여는가? 책을 팔아 밥을 먹는 삶이 가능하단 말인가?

충북 괴산에서 ‘숲속작은책방’을 운영하는 백창화·김병록 부부도 그들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부부 역시 책방 주인으론 초짜였고, 책방의 미래에 대해서는 여전히 확신할 수 없었다. 부부가 1년여에 걸쳐 전국의 책방을 돌아다니며 써낸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는 지난 몇 년 사이에 하나의 현상으로 떠오른 ‘동네서점 창업 바람’에 대한 최초의 현장 보고서라고 할 만하다. 책에는 20여개의 동네서점이 소개된다. 2004년 부산에서 문을 열어 책을 통한 문화혁명의 시작을 알린 ‘인디고서원’부터 편집서점 트렌드를 맨 앞에서 이끌어 가는 홍대앞 ‘땡스북스’, 독립출판물 유통 서점의 길을 개척한 ‘유어마인드’, 지역 전통서점의 현대화를 주도하는 충주 ‘책이있는글터’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그림책과 여행책, 어린이책 등을 주제로 삼은 서점들, 제주도의 신생 서점들도 다룬다.

어느 서점도 돈을 많이 벌고 있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어느 서점도 이야기가 없는 곳이 없다. 그들은 하나같이 책의 힘을 믿는 사람들이고, 책을 통해 개인의 삶을 꾸리면서 지역 공동체에 기여하는 꿈을 꾸고 있다.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라기보다는 동네사람들이 모이는 곳, 사람이 있고 이야기가 있는, 그리고 좋은 책이 있는 작지만 진짜 동네책방을 만들고 싶었어요… 작지만 오랫동안 유지되는, 동네에서 사랑받는, 그리고 지역사회에서도 제 역할을 하는 그런 책방을 하고 싶습니다.”

서울 연남동에서 그림책 전문 서점 ‘피노키오’를 운영하는 이희송씨의 이 말은 동네책방 주인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미국 독립서점들처럼 지역의 삶과 이야기를 담는 공간, 그러다 혹시 경영난에 부닥치게 되면 지역 주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지켜주기도 하는, 그런 사랑받는 서점이 지금 동네책방을 하는 이들의 공통된 소망이다.

그것은 불가능한 꿈일까. 유럽 책 문화 탐방기인 ‘유럽의 아날로그 책공간’을 쓰기도 한 저자 백창화는 “유럽의 경우 독립서점들이 유럽 도서 시장 전체 매출의 20퍼센트를 차지하면서 지역 문화의 모세혈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동네책방에 뛰어든 사람들의 뜻은 자못 장하다. 지인들은 “마침내 꿈을 이뤘네”하며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다. 책만 팔아서 먹고 사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주민들은 동네책방의 등장을 반기면서도 책을 사진 않는다. 예쁜 서점이라며 멀리서 구경을 와서도 사진만 찍고 돌아간다. 그래도 어디서나 책과 서점을 사랑하는 이들은 나타나고, 그들의 힘으로 책방이 굴러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에는 동네책방에서 진행되는 흥미로운 실험들이 소개돼 있다. ‘북바이북’은 맥주 파는 서점으로 이미 유명하고, ‘숲속작은책방’은 가정집 안에서 책을 파는 국내 최초의 가정식 서점이다. 홍대역 지하에 있는 여행책 서점 ‘짐프리’는 외국인 여행객을 위한 여행정보센터를 겸하고 있으며, 제주도 ‘소심한책방’은 게스트하우스와 함께 서점을 운영한다.

책과 함께 잠자리(민박)를 파는 ‘북스테이’도 시작됐다. 지난해 겨울 시작된 ‘책이 있는 집에서 하룻밤, 북스테이’ 네트워크에는 현재 6개의 책 관련 공간이 가입돼 있다. 숲속작은책방을 비롯해 1만2000권의 서재로 꾸며진 파주의 게스트하우스 모티프원, 출판사와 서점을 같이 하는 통영 봄날의책방, 그림책과 연극놀이를 주제로 한 화천 문화공간 예술텃밭 등이다.

“책이 있는 집에서 사람들과 함께 책과 문화를 나누는 따뜻한 삶에 대한 꿈. 책과 관련한 다양한 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최소한의 품위 유지를 할 수 있는 자립경제에 대한 꿈”을 안고 연고도 없는 시골 마을에 서점을 연 저자 부부의 이야기에서 시작되는 이 책은 전국에 생겨나는 동네책방들과 거기서 진행되는 실험들을 두루 소개하며 책에 대한 오래된 비관론을 뒤집는다. 실험은 이제 시작됐다. 성공할 수 있느냐는 질문은 아직 너무 이르다. 이 책은 신생 동네책방들의 유쾌하고 따뜻한 활기를 생생하게 전달해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세상이 그래도 살만한 곳이란 느낌을 받게 된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