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노석철] 흥정거리로 전락한 현대車 땅

입력 2015-08-20 00:29

신연희 강남구청장과 박춘희 송파구청장,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희자매’로 불린다. 부자동네인 서울 강남 3구에서 당선된 여성단체장들인 데다 3명 모두 새누리당 소속이다. 이들은 자주 만나 정책협의도 하고 우의도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여러 현안에서 똘똘 뭉쳐 서울시와 대립하곤 했다.

그런데 최근 한전 부지 논란을 보면서 ‘언니, 동생’ 사이가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신 구청장은 현대차가 낼 공공기여금 1조7000억원을 놓고 서울시와 대립하고 있다. 서울시는 6500억원 정도를 탄천도로 지하화와 잠실종합운동장 리모델링에 사용하고 나머지는 강남구에 쓰겠다고 했다.

그러나 신 구청장은 1조7000억원을 전부 강남구에 써야 한다고 버티고 있다. 잠실운동장은 다리 건너 이웃에 있고, ‘절친’ 박 구청장 관할인데도 송파구에 한 푼도 쓸 수 없다고 배수진을 쳤다. 맏언니가 동생 집에 한 푼도 보태줄 수 없다고 모질게 구는 모양새다. 게다가 6500억원을 빼앗길 처지인 박 구청장이 무덤덤한 것도 의아하다. 박 구청장은 언론인터뷰에서 ‘노코멘트’라고 했다. 서울시가 6500억원이란 거액을 송파구에 쓰겠다는 계획이 무산될 위기인데 노코멘트라니….

따라서 이는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박원순 서울시장과 싸우는 신 구청장을 암묵적으로 지지하기 때문이란 해석이 나온다. 한전 부지 혈투에서 ‘희자매’가 강남벨트를 사수하는 공동전선을 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시구청장협의회는 최근 공공기여금을 강남북 균형발전에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강남 3구를 포함한 새누리당 소속 5개 구청장은 빠졌다. 결국 ‘돈을 강남구에만 써야 한다’는 신 구청장 주장은 ‘강남북이 나눠쓰자’는 새정치연합 쪽을 미리 제압하려는 선제공격인지도 모른다.

더 근본적으로는 박 시장과 신 구청장의 깊은 앙금이 깔려 있다. 두 사람은 구룡마을 개발방식을 놓고 처음 맞붙었다. 박 시장은 오세훈 시장 때 논의되던 수용방식을 강남구와 충분한 논의 없이 환지방식으로 바꿔 버렸다. 두 사람은 그때 서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이후엔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못하는 사이가 된 듯하다. 따라서 애초 박 시장의 소통능력 부족이 근본 원인이란 지적도 나온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 신 구청장은 도를 넘고 있다. 신 구청장은 현대차를 볼모로 잡아서라도 박 시장의 굴복을 받아내겠다는 분위기다. 강남구는 지난 6월 한전 부지 내 변전소 이전 증축허가 신청을 반려했다. 최근에는 “서울시의 국제교류복합지구 지구단위계획구역 고시에 명백한 위법 사유가 있다”고 반발하며 결국 18일 고시 무효 확인소송도 제기했다. 이대로 가면 한전 부지 개발사업은 뒤죽박죽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지자체들이 현대차 돈을 놓고 싸우다 현대차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는 형국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버리려는 우를 범하고 있는 셈이다. 10조원짜리 땅을 저당 잡힌 현대차는 ‘관리들의 횡포’에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 자기들 감정싸움에 민간기업을 볼모로 잡는 게 20주년을 맞은 지방자치단체장들이 할 짓인가. 이건 국제적인 망신거리다. 지금 전국 지자체들은 외국자본이나 관광객 유치를 위해 해외를 돌아다니며 구걸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렇게 외국에는 굽신거리면서 국내 기업들만 보면 ‘갑질’하려는 게 우리 공무원들의 DNA인지 모른다. 조금이라도 권한이 생기면 민(民)과 기업 위에 군림하려는 버릇은 언제쯤 사라질까. 해외에 나가 보면 우리 대통령이나 코리아는 몰라도 현대차 브랜드는 어린애들까지 안다. 현대차는 공무원들이 쥐고 흔들어도 되는 그런 구멍가게가 아니다. 노석철 사회2부장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