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라동철] 대성동 프로젝트

입력 2015-08-20 00:20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조산리 대성동마을. 통일대교를 건너 민통선 지역을 한참 들어가면 나오는 이곳은 남측의 비무장지대(DMZ) 내 유일한 민간인 거주 마을이다. ‘자유의 마을’로도 불리는 대성동마을은 남북 분단이 잉태한 마을이다. 1953년 7월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 당시 DMZ 내 남북 양쪽에 민간인 마을을 한 곳씩 두기로 합의해 조성됐다. 대성동마을은 400m 거리에 군사분계선이 있고, 그 너머 800m 거리에 북한의 기정동마을과 마주하고 있다. 49가구 207명이 살고 있는 이곳은 유엔군사령부의 허가를 받아야 드나들 수 있고 심야에는 통행이 제한되는 고립된 공간이다.

이런 대성동마을에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80년 대성동 종합개발계획에 따라 정부 주도로 주택개량 사업이 이뤄진 후 정체됐던 마을을 재생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민관 협력으로 추진되고 있다. ‘통일맞이 첫 마을 대성동 프로젝트’로 명명된 이 프로젝트는 낡은 주택을 개보수하고,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을 정비하고, 마을공동체를 활성화시키는 사업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예산이 중심이지만 사업에는 민간 후원과 주민 자부담, 국민성금 등이 투입될 예정이다. 행정자치부와 경기도, 파주시, 지역발전위원회 등 행정기관과 한국해비타트, LH, 새마을금고중앙회 등 민간기업·단체, 마을주민 등이 지난달 23일 대성동초등학교에서 관계기관 협약식을 갖고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KT 후원으로 마을회관에 최첨단 ‘기가 사랑방’이 문을 열었다. 청호나이스는 마을에 제습기 50대를 기증했고 비데와 정수기도 보낼 계획이다. 비어있던 마을 공회당은 마을기록전시관으로 리모델링해 연내 개관할 예정이다. 주택 개보수와 기반시설 정비, 마을 경관 개선 사업은 내년부터 2∼3년에 걸쳐 추진된다. 한국해비타트는 홈페이지에서, 네이버는 온라인기부포털인 해피빈에서 프로젝트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모으기 위한 성금모금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3년 후면 대성동마을은 주거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된 마을로 탈바꿈하게 된다.

일부 논란도 있지만 대성동 프로젝트는 의미 있는 사업이다. 분단의 상처를 껴안고 오랫동안 불편을 감수하며 살아온 대성동마을 주민들을 잊지 않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증표이다. 그러나 프로젝트가 진정 성공하려면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대성동 프로젝트는 분단의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이명박정부 이후 관계가 극도로 경색된 남북한이 화해·협력하며 평화통일로 나아가는 동력을 끌어내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이달 초 목함지뢰 폭발사고가 발생한 곳은 대성동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155마일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은 일촉즉발의 대립 상태다. 대성동마을에서 빤히 보이는 기정동마을 서쪽에는 개성공단이 붙어있다. 대립과 공존이 불안하게 동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상황을 개선하려면 남북한이 교류·협력 확대를 통해 긴장을 완화하고 서로에 대한 신뢰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 최선이다. 통일은 내년에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남북한 정서적 이질감과 경제적 격차가 이렇게 큰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통일은 재앙이 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창한 한반도 평화구축 방안인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도 북한과의 관계 개선 없이는 실현이 불가능하다. 분단의 산물인 대성동마을과 기정동마을이 자매결연을 하고 주민들이 서로 오가는 날은 그저 꿈일 뿐인가. 대성동마을이 진정한 ‘통일맞이 첫 마을’이 되는 건 바로 그때가 아닐까.

라동철 사회2부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