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진정한 광복은 통일이 이뤄질 때 완성된다고 한다. 하지만 남과 북은 분단 70년을 맞은 지금까지 통일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대립갈등을 격화시키고 있다. 이러다가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분단을 고착화시킬지도 모른다. 남북 갈등의 지속, 한반도 주변 국가들의 ‘2개의 한국’ 정책 등으로 통일 실현은 어려워지고, 남과 북이 2개의 주권 국가로 제 갈 길을 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30여년 만에 북한에 의한 지뢰도발 사건이 발생하고 휴전선 일대에서는 남과 북이 서로를 비난하는 확성기 방송이 10여년 만에 재개됐다. 냉전시대의 관성이 한반도를 지배하면서 광복 70주년을 맞은 올해 남북관계에서 뭔가 전기를 열 것을 기대했던 희망은 사라지고 확성기 소음과 군사훈련의 포연이 한반도 허리를 휘감고 있다. 어떤 돌발 변수가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이 도처에 널려 있다. 북한의 지뢰 도발로 남북관계 경색 국면이 상당 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북한은 지뢰 도발 사건을 ‘남측의 자작극’이라고 부인하고 있지만, 북한 소행이란 점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는 것 같다.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북측이 지뢰 도발을 감행했다면 ‘저강도 도발’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국제사회로의 제재를 가중시킬 추가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실험 같은 고강도 도발이 어려운 조건에서 저강도 도발을 감행해 정전체제의 불안정성을 부각하려는지도 모른다.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 과제 중에 ‘DMZ 세계생태평화공원’ 조성 사업이 있다. 지뢰 도발 사건은 DMZ에 생태평화공원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실감케 한다. 한때 군 당국이 ‘화공작전’을 재개할 경우 생태계는 파괴될 수밖에 없다.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나무와 숲을 불태운다면 DMZ 생태평화공원의 의미도 퇴색하게 될 것이다. 화공작전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불태우는 어리석은 것인지도 모른다.
북한의 지뢰 도발 사건 이후 박근혜정부가 취한 도발 억지와 평화 구축의 병행 추진은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정부 집권 초기에 벌어진 관광객 피격 사건이 결국 지금과 같은 남북관계 단절의 단초가 됐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박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어떠한 도발에도 단호히 대응할 것이지만 북한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민생 향상과 경제 발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기회의 문을 열어두고 남북관계 복원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 복원이 이뤄지지 못하고 갈등을 지속하는 데는 협상에 임하는 입장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비정치적 교류·협력부터 시작해 신뢰를 쌓겠다는 남측의 기능주의적 접근과 정치군사적인 문제부터 해결해야 관계를 복원할 수 있다는 북한의 ‘근본 문제’ 우선 해결론이 충돌하고 있다. 지뢰 도발도 정치군사 문제를 부각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DMZ에서의 군사적 충돌을 피하고 남북관계 복원을 위해서는 당국 대화를 서둘러야 한다. 진정성 있는 남북대화가 이뤄지려면 남측은 북한 급변사태에 관한 희망적 사고를 버려야 하고, 북측은 남북 갈등을 체제 결속에 활용하려는 ‘적대적 의존관계’의 관성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것이다.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휴전선 인근 개성공단에서 한 가닥 희망적인 소식을 전해왔다. 난항을 보이던 임금 협상을 타결했다. 남북이 경제적 이익을 중심으로 상생을 지향하고 타협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었다. 남과 북은 시대착오적인 갈등을 멈추고 화해·협력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할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시사풍향계-고유환] 북한의 지뢰도발 이후 남북관계
입력 2015-08-20 0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