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소몰이축제 잇따른 사망사고… 원인은 경기침체?

입력 2015-08-19 02:35
소몰이 축제가 열리는 스페인 북부 팔체스의 한 마을에서 16일(현지시간) 참가자들이 소 떼의 추적을 피해 달아나고 있다. 달리는 사람들 뒤편으로 한 남성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습이 보인다. AP연합뉴스

스페인 전역에서 여름을 맞아 소몰이(bull run) 축제가 열리고 있지만 최근 잇달아 사고가 발생하면서 관광객을 끌어 모으던 소몰이 축제가 ‘죽음의 축제’로 변질돼 가고 있다.

17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과 BBC방송 등에 따르면 스페인에서는 올여름에만 지금까지 최소 10명이 황소에 들이받히거나 밟혀 목숨을 잃었다. 황소를 자극한 다음 사람들이 황소 앞에서 내달리는 형태의 소몰이 축제는 원형 운동장에서 소를 찔러 죽이는 투우(bull fight)와 함께 스페인을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 잡았다. 해마다 소뿔에 받히거나 밟혀 다치는 이가 나오긴 하지만 올해처럼 많은 사망자가 나오는 것은 이례적이다.

특히 지난 주말부터 3일 사이에만 4명이 숨지면서 이 축제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은 극도로 높아졌다. 17일에도 수도 마드리드 북부 트라스피네도 마을에서는 소몰이 축제에 참가했다가 숨진 젊은 정치인의 추도식이 열렸다. 호세 알베르토 페냐스 로페스라는 33세 청년 사회당원은 페냐피엘에서 열린 축제에 참석했다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돌진한 소에 여러 번 들이받혀 숨졌다. 또 북부 팜플로나 인근 레린에서는 18세 소년이 황소에 배를 받혀 사망했고 블랑카와 무세로스 등에서도 53세와 32세 관람객이 소에 받혀 목숨을 잃었다.

이처럼 희생자가 급증한 배경은 무엇일까. 가디언은 뜻밖에도 ‘경기 침체’가 원인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스페인 일간 엘파이스의 투우 비평가인 안토니오 로르카는 “경기 침체로 올해 스페인에서만 투우 경기가 2008년 경제위기가 시작되기 전보다 300회 이상 줄었다”고 지적했다. 대신 소몰이 축제가 지난해보다 16% 늘어났다. 로르카는 “투우용 싸움소를 키우는 목장 수는 그대로이기 때문에 목장주들이 싸움소를 소몰이 축제에 대신 내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체구가 크고 공격적인 소들이 투우용으로 사육되는데, 이런 싸움소들이 소몰이 축제에 보내지면서 사람을 맹렬히 공격하는 사례가 늘었다는 것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용이 늘어난 것도 ‘죽음’을 재촉하는 요인으로 분석됐다. 휴대전화 등으로 사진이나 비디오 촬영에 주의를 빼앗기다 숨지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일에는 마드리드 남부 비야세카 델라 사그라 지역에서 소몰이 축제를 촬영하던 32세 남성이 뒤에서 황소에 받혀 사망했으며, 지난달에는 페르데게르 지역에서 44세 프랑스인 남성이 휴대전화로 축제를 촬영하다 숨졌다.

사정이 이렇지만 스페인 당국은 손을 놓고 있다. 무세로스 지역의 축제 관리자도 “투우 관련 축제 사고는 교통사고나 익사사고보다 적지 않으냐”고 항변했다. 하지만 BBC방송은 투우 및 소몰이 산업이 2013년 한 해에만 2억8240만 유로(약 3700억원)의 이윤을 냈으며 그중 5분의 1가량인 5900만 유로(약 774억원)가 세금으로 걷혔다고 전했다. 사람이 계속 죽어나가도 당국이 축제를 규제하기가 어려운 속사정인 것이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