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자식처럼 키우게… 제도 시행 7년] 친양자 입양 깨지면, 아이는 두 번 상처

입력 2015-08-19 02:57

40대 남성 A씨의 가족관계증명서에는 딸(13)이 한 명 기재돼 있다. 딸은 A씨의 성(姓)과 본(本)을 따르고 있지만 두 사람은 피가 섞인 부녀(父女) 관계는 아니다. ‘친양자 입양’ 제도를 활용해 재혼한 아내가 전 남편과 낳았던 딸의 성·본을 A씨와 같게 바꿨다.

문제는 A씨 부부가 지난해 이혼하면서 불거졌다. 딸과 남남이 됐을 뿐 아니라 양육비까지 줘야 하자 A씨는 부녀관계를 청산하겠다는 ‘친양자 파양’ 소송을 냈다.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6단독 박성만 판사는 “민법이 정한 파양 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고 18일 밝혔다. 친양자 파양을 제한하는 민법 규정을 엄격히 적용한 것이다.

‘남의 자식’을 ‘친자식’처럼 키울 수 있는 친양자 입양 제도는 국내 입양 활성화와 입양가정의 말 못할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기존 일반입양 제도는 입양된 아이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양자(養子)’라는 표시와 함께 친생부모의 성명을 기재했다. 친부모의 성·본도 그대로 따라야 했다. 2005년 법 개정에 이어 2008년 1월 친양자 입양 제도가 시행되자 이를 기다린 부모들의 신청이 3개월 만에 1300여건이나 쏟아지기도 했다.

제도 시행 7년이 흐른 현재 친양자 입양 신청의 대부분은 A씨 같은 재혼 가정의 ‘계자(系子·배우자가 전 배우자와 낳은 자녀) 입양’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08년∼2013년 2월 친양자 입양 신청 중 262건을 분석한 결과 계자 입양이 86.6%(227건)를 차지했다.

다시 이혼하는 재혼 가정이 늘면서 ‘파양’ 신청도 뒤따르고 있다. 같은 기간 파양이 허가된 45건 중 26건이 이혼 때문이었고 그중 14건은 재혼 부부였다. 현행법은 양친이 친양자를 학대·유기하거나 친양자가 양친에게 패륜 행위를 하는 경우로 파양 기준을 엄격히 제한하지만 재판부가 이를 가려내기는 쉽지 않은 실정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박복순 연구위원은 “친양자 입양 제도가 계자 입양의 방편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재혼 부부가 이혼할 경우 자녀는 언제든지 친자관계가 끊기는 위험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제도가 취지와 다르게 현실에 적용되면서 미성년 자녀들이 가장 큰 상처를 입고 있다. 박 연구위원은 “친양자 입양 성립 후 불과 1∼2년 만에 파양에 이르는 경우가 30%에 달했다”고 말했다. 법원 관계자는 “친양자 입양을 했다가 부부관계가 깨졌다고 파양을 청구하면 결국 아이의 상처와 혼란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아이를 위해 더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