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혈’의 배신?… 만병통치 논란

입력 2015-08-18 03:04 수정 2015-08-18 14:28

제대혈이 유효성 논란에 휩싸였다. 제대혈 보관 서비스 업체는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다며 일부 네티즌을 검찰에 고소했다. 가입자들은 집단 소송을 준비하고 나섰다. 갈수록 커지는 갈등이 결국 법정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제대혈은 출산 시 태반이나 탯줄에 존재하는 혈액이다. 조혈모세포가 풍부해 난치성 질환 치료에 활용된다고 알려져 있다. 최근 일부 시민단체가 “제대혈은 자기 치료에 쓰일 확률이 극히 낮아 ‘얼음쓰레기’에 불과하다. 보관료만 챙기는 사기극이다”고 주장하면서 불을 지폈다. 업체들은 “제대혈 산업은 계속 발전 중이고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다”고 반박한다. 민간 제대혈은행은 100만∼400만원의 보관료를 받고 짧게는 10년, 길게는 평생 이를 보관하다 필요할 때 꺼내 치료에 쓰게 해준다. 2001년 이후 국내에서 제대혈 보관에 나선 사람은 52만명이나 된다.

◇‘기적의 치료제’ vs ‘얼음쓰레기’=1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14년간 국내에 보관된 기증 제대혈은 4만4667건인 반면 가족 제대혈은 52만3487건이다. 전체의 약 94%가 민간 업체에서 운용 중인 자가 제대혈이다. 같은 기간 제대혈을 이식받은 건수는 가족 제대혈이 390건, 기증 제대혈이 801건으로 이식률은 각각 0.07%, 0.20%다.

제대혈을 보관했지만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되는 건강한 상태인 경우 이식률은 낮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이식률 수치만으로 제대혈의 효과나 필요성을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현재까지 활용도가 뛰어나지는 않다. 2013년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 발표한 ‘한국 바이오벤처 20년’ 보고서는 제대혈이 보관 건수에 비해 실제 활용 비율이 낮아 관련 제도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보고서에는 백혈병 등 유전적 원인의 질환은 본인이나 가족의 제대혈을 이용하는 게 효과가 없다는 점이 언급됐다.

시민단체들은 활용도가 낮다는 점에 주목했다. 시민단체들은 활용도가 낮다는 점에 주목했다. 올바른 시장경제를 위한 국민연합 등 5개 시민단체는 지난달 말 세종시 복지부와 청와대,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대혈 보관 서비스에 가입했지만 백혈병 치료에 도움을 받지 못한 사례를 제시하며 “자가 제대혈 보관 서비스가 백혈병 등 난치병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용될 확률도 많아야 0.04% 정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제대혈 서비스 업체들은 ‘바이오 신사업’ ‘미래사업’이라는 점을 들며 향후 발전 가능성과 사용 범위가 넓어질 것이라고 자신한다. 난치병은 발병률 자체가 낮아 이식률이 낮게 나올 수밖에 없고, 보관자 중 성인이 없기 때문에 아직 사용 시기가 오지 않았다고 보는 게 의학계 입장이라고 강조한다. 국내 제대혈 서비스 시장은 5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한 업체 관계자는 “자가 제대혈을 보관한 현재 아동이 성인이 돼 병에 걸렸을 경우 어느 정도 치료가 가능한지를 보고 유효성 여부를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자가 제대혈은 혈액암뿐만 아니라 자가면역 질환, 뇌신경계 질환, 성인 암 보조치료제로도 쓰인다. 다양한 케이스로 활용 가능한데 시민단체는 혈액암에 국한해 사용 가능성이 낮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 업체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일부 네티즌을 지난 10일 수원지검에 고소했다.

◇소비자 혼란…“서비스 취소와 환불은 불가”=업체와 시민단체의 갑론을박이 이어지자 소비자는 혼란에 빠졌다. 서비스를 취소하거나 환불받기 원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하지만 약관과 계약서에 따라 이를 번복하기란 쉽지 않다. 지난 2월 산부인과에 판촉을 나온 상담사 권유로 175만원을 내고 제대혈 30년 보관 서비스에 가입한 민모(29·여)씨는 취소 의사를 밝혔지만 “불가능하다”는 대답을 들었다. 이 업체 관계자는 “제대혈을 폐기해도 업체로선 초기 발생 비용이 있기 때문에 계약된 돈을 모두 납부해야 한다. 위약금을 물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일부 가입자들은 집단 소송을 준비 중이다.

보건 당국이 2011년 7월 시행된 ‘제대혈 관리 및 연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전국 20여개 제대혈은행을 관리하고 있지만 자가 제대혈 관련 계약이나 정보 고지에 대한 일부 가이드라인이 없는 것도 문제다. 복지부 관계자는 “2년마다 정기심사를 하고 이때 제대혈 채취·입고·보관·폐기와 과대광고 여부 등을 모두 평가한다”며 “2013년 평가에서 적발된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