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부터 경기도 김포에서 약국을 운영한 A약사는 B약사에게 월 100만∼200만원을 주기로 하고 약사 면허를 빌렸다. 빌린 면허로 서울 성북구에 약국을 하나 더 차렸다. A약사가 이런 방식으로 2012년 10월까지 2년여간 건강보험공단에서 부당하게 타낸 요양급여액은 5억1089만340원이나 된다. 공단은 지금까지 1279만890원을 환수했지만 나머지 4억9000여만원은 받아내지 못하고 있다.
C약사는 약사가 아닌 일반인 D씨에게 월 300만원을 받는 조건으로 약사 면허증을 빌려줬다. D씨는 2013년 10월부터 지난해 2월 초까지 충남의 한 군 지역에 C약사 명의로 약국을 개설해 운영했다. 공단은 D씨가 약값과 조제료 등 건강보험공단에서 타낸 1억3512만원에 대한 환수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불법 ‘면대(면허대여) 약국’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 면대약국은 일반인이나 약사가 다른 약사의 면허증을 빌려 개설하고 운영하는 약국을 말한다. 불법 개설 의료기관을 뜻하는 ‘사무장 병원’에 견줘 약학계에서 통용되는 용어다. 검찰과 경찰은 면대약국 의혹이 제기된 36곳에 대해 수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17일 확인됐다.
약사면허 불법 거래는 개인 간 은밀히 이뤄지는 데다 소규모인 약국 구조상 내부 고발 루트가 다양하지 않아 적발은 물론 수사로 실상을 밝혀내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간호사·원무직원 등 내부자 신고로 적발 사례가 갈수록 늘어가는 사무장 병원과 대조적이다. 면대약국이 부당하게 타낸 요양급여도 제대로 환수되지 않아 건강보험 재정을 축내는 요인이 되고 있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2010년 이후 올 5월까지 불법 면대약국 70곳이 적발됐다. 환수결정 금액은 247억5600만원이지만 5년 평균 징수율은 11.77%(29억1500만원)에 불과하다. 건보공단은 “현재 인지한 면대약국 의혹 52건 중 자료 보완, 추가 확인 등을 통해 36건이 수사기관 수사를 받고 있으며 나머지 16건도 증거자료를 수집 중”이라고 밝혔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약사면허 거래는 구직센터 게시판이나 약사들이 많이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아주 은밀하게 이뤄지는 걸로 안다”고 했다. 주로 약사면허 취득 후 경제적 어려움으로 약국을 열지 못하거나 활동이 없는 고령 약사 등이 ‘용돈 벌이’로 면허 대여에 나선다고 공단 측은 파악하고 있다.
면대약국 개설수법은 날로 지능화하고 규모도 대형화되는 추세다. 예를 들어 건물주들이 직영 면대약국을 여럿 개설하는 ‘기업형’이 그렇다. 건물주들은 면허를 대여해준 약사가 약국에 상근하면 적발이 쉽지 않다는 점을 악용해 ‘문어발 확장’에 나서기도 한다.
인천 부평구약사회는 최근 인천의 한 종합병원 앞에 문을 연 약국에 대해 면대약국 의혹을 제기하며 한 달째 약국 부근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약사회 자체 조사결과 이 약국을 운영하는 E약사는 이곳을 포함해 경기도 일산 분당 등지에 다수의 약국을 실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대한약사회가 진상조사에 나섰고 건보공단에도 사실 확인을 요청한 상태다. 부평구약사회 소속 한 약사는 “교묘하게 법망을 피하는 면대약국을 방치하면 주변의 소규모 약국이 심각한 경영난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불법 면대약국을 근절하려면 모호한 법규를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의료법이 ‘의료인은 어떠한 명목으로도 둘 이상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수 없다’고 규정한 반면, 약사법에는 ‘약사 또는 한약사는 하나의 약국만 개설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둘 이상 약국을 운영하는 부분에 대한 법적 구속력이 모호한 것이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면대 약사를 상근시켜 실제 운영하는 것처럼 꾸미면 교묘히 법망을 빠져 나갈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부당청구 신고 포상금제 강화나 내부 고발자에 환수액 경감 등 신고율을 높일 수 있는 제도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기획] 약사면허 은밀한 불법거래… ‘면대약국’ 판친다
입력 2015-08-18 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