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독립 기구로 발을 뗀 국회의원 선거구획정위원회가 국회의 늑장 대응으로 당초 취지가 퇴색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획정위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결정과는 별개로 획정 작업을 시작하겠다고 공언했지만 현실적으로 난관이 적지 않다. 획정안 확정 시한이 다가올수록 두 위원회 간 주도권 다툼이 격화될 가능성이 있다.
한 획정위원은 17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획정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하는 시한(10월 13일)까지 두 달도 남지 않았는데 국회에서 획정 기준조차 안 주고 있어 답답할 따름”이라고 했다. 이 위원은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는 없어 지난 19대 총선 때 적용됐던 법률과 세부 규칙에 따라 자체적으로 획정안을 만들어보려 한다”고 했다.
획정위는 현행법과 공청회 등을 통해 수렴한 의견을 바탕으로 획정 작업을 진행할 방침이다. 아직 의원 정수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여서 지역구 의원 수가 현행을 유지할 경우, 늘거나 줄어들 경우를 모두 감안해야 한다. 다른 획정위원은 “논의 도중에라도 국회가 의원 정수와 획정 기준을 확정하면 반영할 수 있도록 가능한 경우의 수를 전부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선거구 획정 관련 현행법이 기본 원칙만 규정하고 있어 이를 기준으로 삼기엔 모호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번 획정위는 과거에 비해 위상과 권한이 커졌다. 국회가 아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기구로 설치돼 독립성이 강화됐다. 국회는 획정위가 내놓은 안이 법률에 위반되는 경우에 한해 한 차례 재제출을 요구할 수 있을 뿐 내용은 손댈 수 없도록 했다. 이 두 가지가 지난 5월 개정된 공직선거법의 핵심이다. 선거구를 획정하는 데 국회 정개특위보다 국회 밖의 획정위 권한이 훨씬 세진 것이다. 역대 선거를 보면 획정위 역할은 제한적이었고, 획정위 안은 단순 참고용에 그쳤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획정위 내부에선 정개특위가 획정위를 무력화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정개특위는 “무작정 국회 결정만 기다릴 수 없다”고 압박하는 획정위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보였다. 정개특위 위원은 “획정위는 획정위대로 작업을 진행하고, 정개특위가 국회 의견을 수렴해 전달하면 이를 반영하면 될 문제”라고 했다. 정개특위는 18일 전체회의에서 향후 일정을 논의할 예정이다.
획정위 관계자는 “국회는 획정위 안이 법률에 위배될 경우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이것이 법에 위배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라도 국회가 획정 기준을 법률 사항으로 확정해줘야 된다”고 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이슈분석] 사상 첫 독립기구로 출범한 선거구획정위 힘 세졌는데… 독립적 획정 가능할까
입력 2015-08-18 02:13 수정 2015-08-18 1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