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으로 러시아에서 겪은 고난의 삶’… 올가 데이 前 교수의 증언

입력 2015-08-18 00:58
고려인 2세 올가 데이 전 러시아 극동연방대 교수가 한국신학정보연구원이 분단·광복 70주년을 맞아 지난 14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손니치 센터에서 개최한 포럼에서 고려인의 애환을 설명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포럼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러시아 연해주에 살았던 제 부모님은 1937년 옛 소련의 ‘고려인 강제 이주’ 정책에 의해 어느 날 갑자기 기차를 타야만 했어요. 그때 어머니는 임신한 상태였고요. 부모님을 비롯한 17만여명의 한인들은 동물들을 실어 나르는 기차에 실려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됐습니다.”

올가 데이 전 러시아 극동연방대 교수는 ‘고려인으로 러시아에서 살아온 삶’에 대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카자흐스탄에서 고려인 2세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척박한 땅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았다. 억척스럽게 일해 3남 3녀의 자녀들을 모두 대학 교육까지 시켰다. 자녀들이 조국을 잊지 않도록 가정에서 한국 역사와 한국어도 가르쳤다. 데이 전 교수는 증언 말미에 “1990년대 초반 가족과 함께 연해주로 돌아와 가장 힘들 때 도움을 준 사람이 한국에서 온 선교사들”이라면서 “그분들 덕분에 고려인들은 하나님을 알게 됐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신학정보연구원(원장 김정우 총신대 교수)은 지난 14일(현지시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손니치 센터에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보는 한반도의 역사와 성경의 만남’이란 주제로 포럼을 갖고 고려인의 증언을 듣는 시간을 마련했다. 연구원은 분단·광복 70주년인 올해 광복절을 맞아 우리나라의 해방 역사를 성경적으로 조명하기 위해 이번 포럼을 기획했다. 포럼에선 3명의 국내 신학자들이 발표했다.

양재훈 협성대 교수는 ‘러시아 이주 한인의 수난사’에 대해 발표했다. 한인의 러시아 이주는 먹을 것을 찾아 나섰던 1863년부터 시작됐다. 1905∼1910년엔 독립운동가들이 항일운동을 위해 이곳을 찾았다. 한인들은 벼농사 기술 덕분에 척박한 땅에서도 생존했고 현지인들의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1937년 8월 소련은 고려인 강제 이주를 결정했다. 양 교수는 “1937년 연해주 인구 약 80만명 가운데 17만여명이 한인들이어서 소련은 위협을 느꼈다”면서 “애굽이 점점 인구가 증가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경계했던 것처럼 소련은 한인들에게 ‘일본 스파이’라는 누명을 씌워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시켰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이 1988년 서울올림픽을 개최한 뒤 다행히 고려인들의 러시아 내 입지가 강화됐다”면서 “덕분에 러시아에서 93년 ‘러시아 한인의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이 통과됐다”고 설명했다.

‘해방과 추방, 구약신학적 검토’라는 주제로 발표한 왕대일 감리교신학대 교수는 “타지로 추방당하며 아픔을 겪는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왕 교수는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당한 고난을 결국 선한 결과로 이끄신다”면서 “경전 작업 등 이스라엘의 빛나는 업적은 그들이 디아스포라로 있을 때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예언자 예레미야는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추방된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찾으며 그 지역의 ‘샬롬’을 구하라고 말했다(렘 29:5∼14)”면서 “예언자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추방’이 오히려 하나님을 만나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왕 교수는 한국교회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는 “한국교회는 고려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샬롬’의 역할을 감당하고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있도록 그들을 세워줘야 한다”면서 “그들이 삶의 방향과 비전을 찾을 수 있도록 보듬고 격려하자”고 제안했다.

‘신약성경의 추방과 해방’이란 주제로 발표한 박형대 총신대 신대원 교수는 “인간의 모든 고통을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써 모든 민족은 진정한 해방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박 교수는 “예수님 덕분에 해방된 크리스천들은 다른 사람의 해방(구원)을 위해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고려인들은 타국에서 큰 시련을 겪었지만 강제 이주를 통해 벼농사 등 유익한 기술이 중앙아시아 등에 전달됐다”면서 “고려인, 조선족, 새터민 등 다양한 사연으로 디아스포라의 삶을 사는 이들에 대한 연구와 바른 평가, 정당한 대우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블라디보스토크=글·사진 김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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