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롭다, 다양하다… 다큐의 참맛 재발견

입력 2015-08-19 02:45

‘다큐멘터리 영화는 어렵고 지루한 장르인가?’ 유명 배우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대체로 주제 의식이 분명한데다 편하게 볼만한 이야기를 다루지도 않는다. 하지만 다큐에 대한 대중의 거리감은 조금씩 좁혀지고 있다. 지난해 다큐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500만 관객을, 2008년 ‘워낭소리’는 250만 관객을 모았다. 다큐 영화는 어떤 재미로 보는 걸까.

다큐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 ‘재미’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가 24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시내 극장가에서 열린다. 올해로 12번째를 맞는 이번 다큐영화제에는 32개국 다큐 작가들이 52편의 작품을 들고 나왔다. 세계 다큐멘터리의 흐름을 알 수 있고, 극영화와는 다른 다큐 영화의 참맛을 느낄만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세계 다큐 트렌드…웰빙, 웰다잉, 지속 가능한 삶=잘 사는 문제와 평안하게 삶을 마무리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다루는 다큐가 늘고 있다. ‘내 나이가 어때서’, ‘힙합 어르신, 라스베이거스에 가다’, ‘노인들의 계획’ 등 이런 경향을 담은 영화들이 소개된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도 다큐 작가들의 주된 관심사다. 아예 ‘미래를 향한 창’이라는 섹션에서 기술 발달과 지속 가능한 삶에 관련된 다큐를 집중 조명한다. 개막작 ‘스톡홀름씨의 좋은 날’은 지속 가능한 삶을 살아가는 동물과 교감하며 농사와 목축을 하는 덴마크 농부 닐슨 스톡홀름의 이야기를 다뤘다.

3D 프린터 혁명이 가져올 긍정적인 삶의 변화를 그린 작품 ‘3D 프린팅: 전설을 만들다’, 낭비되는 음식물 이미지를 충격적으로 보여주는 ‘먹을래? 먹을래!’, 금융자본주의에 경고하는 ‘스위스 비밀계좌를 팝니다’, 반인간주의적인 기술 남용을 경고하는 ‘드론’ 등의 작품도 있다.

◇형식·매체·장르 파괴한 미학적 실험작들=다큐는 눈으로 확인되는 사실만 다루는 것일까?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다면 그것은 사실의 영역에 있는 걸까? 그 사실이 진실을 말한다고 할 수 있을까? 다큐 작가들의 이러한 고민은 형식이나 매체, 장르에 변형을 주거나 색다른 시도를 하는 방식으로 드러나고 있다.

현실을 기록하는 다큐에 환상성을 극대화하는 애니메이션 기법이 접목된 ‘애니메이티드 다큐’들이 공개된다. 전쟁이 야기한 디아스포라 이야기 ‘홀로코스트의 아이들’과 인도의 엘리트 교육 폐해를 다룬 ‘어느 의대생의 죽음’ 등이다.

현실의 이야기를 담으면서 픽션을 가미한 ‘하이브리드 영화’도 있다. 차이니즈 드림을 위해 중국에 온 콩고인을 다룬 ‘이 티셔츠를 어떡하지?’, 청각장애 소녀를 그린 ‘퀸 오브 사일런스’ 등이 이에 속한다. 극영화적인 요소와 다큐의 세팅이 결합된 영화들이다.

◇어린이가 행복한 세상=‘어린이는 우리 모두의 미래’라는 명제는 진부하다. 하지만 세계 어린이들이 처한 현실을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제는 ‘모든 어린이가 행복한 세상’을 모토로 삼아 온 유니세프(UNICEF)와 손을 잡고 아동 인권을 다룬 작품들을 소개한다. 세상을 향해 입을 닫아버린 소년이 다시 세상과 소통하는 과정을 그린 ‘말해줘, 무싸’, 가난하지만 시를 읽으며 꿈을 키우는 소년의 이야기 ‘시를 파는 소년’ 등이 선보인다. 우리나라 이승준 감독의 ‘얘기해도 돼요?’와 민환기 감독의 ‘어린 인생’도 볼 수 있다. 이 감독은 ‘달팽이의 별’로 2011년 암스테르담영화제 대상을, 민 감독은 ‘불안’으로 2012년 부산국제영화제 비프메세나상을 받았다.

◇화제작들=미국 국가안보국(NSA)의 통신감찰을 고발한 에드워드 스노든의 이야기로 올해 아카데미 다큐부문 대상을 수상한 ‘시티즌포’(Citizenfour), 핵전쟁 위기를 막은 과학자들의 드라마틱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냉전 스릴러처럼 다룬 ‘세상을 구한 남자’는 극영화 못잖은 재미를 선사한다.

남성의 전유물인 카레이싱에 도전한 아랍 여성들을 다룬 ‘스피드 시스터즈’, 유럽 양대 서커스 가문의 공연과 단원들의 사랑을 담은 ‘사랑의 서커스’, 모성의 다양한 모습을 선보이는 ‘나는 엄마입니다’ 등도 흥미롭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