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논쟁-‘사법시험 존치’ 이래서 반대] 로스쿨이 진정한 희망 사다리

입력 2015-08-19 02:54
새정치민주연합 김관영 의원이 지난달 2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사법시험, 폐지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가진 토론회 광경. 야당 의원이 처음으로 서울지방변호사회, 전국법과대학교수회 등과 함께 주최한 토론회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연합뉴스
오수근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제도개선특위 위원장·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장)
사법시험 존치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정치권과 법조계, 학계의 찬반 논쟁이 한층 뜨거워지는 가운데 직접적 이해관계를 가진 고시생들까지 집단행동에 나섰다. 이들은 최근 ‘사시 존치를 위한 고시생 모임’을 만들어 국회 입법청원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사시 폐지 시한이 임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시는 2017년 완전히 폐지될 예정이다.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 도입에 따라 내년에 마지막 1차 시험을 치르고 2017년 2차와 3차 시험을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시 존치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사회적 해법 찾기가 불가피해진 양상이다. 오신환 새누리당 의원과 새누리당 미래세대위원회가 17일 국회도서관에서 ‘대학생, 고시생들이 희망하는 법조인 양성제도’ 토론회를 개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사시 폐지와 관련된 실질적 당사자인 고시생·대학생 등 청년세대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는 자리가 마련된 것은 처음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찬반 양측의 주장은 팽팽하게 맞서 왔다. 대한변호사협회 등은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희망의 사다리를 없애서는 안 된다’며 사시 존치를 주장하는 반면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는 사회적 낭비와 폐해를 막기 위한 당초 결정대로 사시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회의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찬반양론을 들어본다.

박정태 논설위원 jtpark@kmib.co.kr

이래서 반대
오수근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제도개선특위 위원장·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장)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 사법시험에 합격했다고 하면 낮에는 논두렁에서 풀 베고 밤에 혼자 공부해서 합격한 것을 상상하지만 그런 일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 고시촌에서 비용을 들여가며 장시간 공부해야 한다. 19세에 대학에 입학한 학생이 평균 9년을 공부해야 사시에 합격한다. 학교 가지 않고 혼자 공부한다고 돈이 안 드는 것이 아니다. 책을 사 보고, 고시학원에서 수강하고, 동영상 강의 듣는 데 연평균 1000만원 이상을 써야 한다.

이런 큰돈을 매년 쓰면서 오랜 기간 공부하는 건 가난한 학생에게는 불가능에 가깝다. 더욱이 공부를 한다 해도 합격할 확률이 극히 낮고 그래서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 결국 형편이 되는 사람만 사시 준비를 할 수 있다. 사시 합격생 대부분은 우리나라에서 중산층 이상의 사람이다. 진정 희망의 사다리가 필요한 사람에게 사시는 그림의 떡이다.

반면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서는 능력은 있으나 경제적 여건이 안 되는 학생들에게 직접 기회를 제공한다. 우선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 탈북자 등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은 특별전형을 통해 로스쿨에 진학할 기회를 얻는다. 그렇게 진학하는 학생이 매년 전체 입학생의 6%를 넘는다. 로스쿨 입학 후에는 장학금(학교에 따라서는 생활비까지)을 받으며 공부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변호사가 된 수가 지난 4년간 315명에 이른다. 사시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사시가 모든 사람에게 공정한 기회를 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 기회를 이용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사람에게만 기회로 구실했지 정말 어려운 사람에게는 아무런 기회가 되지 않았다. 로스쿨 등록금이 많다고 하지만 전국 평균으로는 등록금 총액의 38.2%, 상대적으로 등록금이 더 많은 사립대는 43.9%가 장학금으로 지급된다. 간단히 말하면 10명 중 6명은 등록금을 많이 내지만 4명은 등록금을 전혀 내지 않는다. 이것이 취약계층에게 진정한 희망의 사다리가 아닌가.

2002년부터 2014까지 매년 사시 합격생을 배출하는 대학은 평균 43개다. 그런데 상위 10개 대학이 전체 합격자의 84.5%를, 수도권 6개 대학이 전체의 76.5%를 차지하고 있다. 법조계를 특정 집단이 독점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 배경이다.

반면 로스쿨 합격생을 낸 대학은 연평균 95개다. 사시 시절보다 배 이상 늘어나서 더 많은 대학의 졸업생들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상위 10개 대학 점유율도 75.7%로 10% 포인트 가까이 낮아졌다. 수도권 6개 대학 점유율은 65.9%로 낮아져 그만큼 지방대 출신 합격자가 늘었다. 올해부터 지방 로스쿨은 정원의 20%를 지역인재 우선선발로 뽑고 있어 지방 출신자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사시가 있으면 지방이나 중소규모 대학의 학생들에게 기회가 돌아갈 것 같지만 실제는 수도권 일부 대학 졸업생이 독차지하게 될 것이다. 누구나 사시를 볼 수 있다고 취약계층에게 합격 기회가 돌아가지는 않는다. 로스쿨처럼 취약계층 학생을 직접 선발해 교육시켜야 진정한 기회가 된다.

사시에 합격한다고 금방 변호사가 되지 않는다. 사법연수원에서 2년간 교육을 받아야 되는데 사법연수생은 공무원으로 월급을 받는다. 연수원 졸업해서 공무원(판사·검사 등)이 되는 수는 100명이 안 되는데 연수원생 전부를 국가 예산으로 교육시켰다. 로스쿨 도입으로 국가 예산이 크게 절감됐는데 사시를 존치시킨다면 막대한 국가 예산을 다시 써야 한다.

취약계층에게 직접 다가갈 수 있는 로스쿨이 희망의 사다리다. 사법연수생에게 주던 월급의 10%만 로스쿨 장학금으로 지원하면 그 희망의 사다리는 더욱 넓어지고 단단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