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전몰자 추도식] 일왕 ‘깊은 반성’ 첫 언급… 아베 담화와는 딴판

입력 2015-08-17 02:47
아키히토 일왕이 15일 일본 부도칸(武道館)에서 열린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 과거 전쟁에 대한 깊은 반성의 뜻을 포함한 추도사를 낭독하고 있다(왼쪽 사진). 뒤는 미치코 왕비. 반면 같은 날 아베 신조 총리의 측근인 일본 자민당의 에토 세이시로 의원(맨 앞)을 비롯한 현역 의원들이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서 참배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2차 세계대전에 대해 추도식에서는 처음으로 ‘깊은 반성’이라는 표현을 썼다.

아키히토 일왕은 15일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 부도칸(武道館)에서 열린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 이른바 ‘오코토바(お言葉·말씀)’라고 불리는 발언을 하며 전쟁 반성과 세계 평화 등을 언급했다.

그는 “여기서 과거를 돌아보고 앞선 대전에 대한 깊은 반성과 함께 앞으로 전쟁의 참화가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전 국민과 함께 싸움터에서 죽고 전화(戰禍)에 쓰러진 사람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추도의 뜻을 표명하며 세계의 평화와 우리나라가 한층 발전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아키히토 일왕이 추도식에서 전쟁에 관해 ‘깊은 반성’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키히토 일왕은 또 “평화의 존속을 갈망하는 국민의 의식에 힘입어 우리나라는 오늘의 평화와 번영을 쌓아 왔다”며 그간 사용하지 않던 표현도 덧붙였다.

도쿄신문은 일왕의 이날 메시지에 관해 “과거의 추도식보다 한층 파고든 표현이 여기저기 반영된 점이 강한 인상을 준다”며 “전후 70년이 지나서 전몰자 추도와 평화의 계승에 위구(危懼·염려하고 두려워함)의 뜻을 품고 있다는 증거”라고 논평했다. 또 국민이 평화를 갈망한다는 내용을 추가한 것은 헌법에 따라 전쟁하지 않는 국가를 유지한 국민의 뜻을 의식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신문은 추도식의 발언 문안을 아키히토 일왕이 직접 썼으며 근래에는 전년도에 썼던 내용을 그대로 쓰다가 이번에 이례적으로 내용에 변화를 줬다고 분석했다. 전후 50년이었던 1995년 “역사를 돌이켜보다”라는 문구가 사용된 이후 지난해까지 매년 거의 똑같았다는 것이다.

아키히토 일왕이 즉위 이후 ‘깊은 반성’이라는 표현을 추도식 외에 쓴 것은 1992년 중국을 방문해 만찬을 할 때와 1994년 일본에 온 한국 김영삼 대통령과 궁중만찬을 할 때 인사말을 하며 언급한 사례가 있다고 도쿄신문은 전했다. 일왕의 이번 메시지는 14일 발표한 전후 70년 담화에서 일본의 가해 행위를 분명히 밝히지 않고 안보법안을 밀어붙여 위헌 논란을 겪고 있는 아베 총리에게 정치적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역대 총리가 언급해 온 아시아 국가에 대한 가해와 이에 대한 반성의 뜻을 3년째 생략했다.

역대 일본 총리가 패전일 추도식에서 언급해 온 ‘부전(不戰) 맹세’를 2013년과 2014년 추도식에서 생략해 논란을 빚었던 아베 총리는 올해는 표현을 다소 바꿔 전쟁하지 않겠다는 뜻을 표명했다. 그러나 역시 역대 총리가 반복해 온 일본이 아시아 국가에 큰 손해와 고통을 안겼다는 설명 등 가해 사실과 반성의 언급은 올해까지 전몰자추도식에서 3년 연속 생략했다.

배병우 선임기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