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인파에 파묻혀 걷는 클린턴 위로 헬기 타고 등장한 트럼프.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선 주자들이 15일(현지시간) 일제히 아이오와주 박람회에 집결하면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조우했다. 대선 레이스가 시작된 이후 두 사람이 공개석상에서 마주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두 사람의 대화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현재 위상을 보여주듯 상징적인 해프닝이 연출됐다고 미 언론들은 보도했다.
1854년을 시작으로 매년 8월 디모인에서 열리는 아이오와 축제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주 박람회이자 세계 최대 가축 전시회 중 하나로, 버터로 만든 실물 크기의 암소와 돼지고기 꼬치로 유명하다. 대선 주자들이 모두 이곳에 모인 이유는 내년 초 당내 경선이 아이오와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힐러리를 곤혹스럽게 하는 질문들=클린턴 전 장관이 박람회에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이 몰려들어 악수를 청하고 사진을 찍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이 지역의 터줏대감 톰 하킨 전 상원의원으로부터 안내를 받으며 박람회장을 돌았다. 많은 사람들이 다가왔지만 클린턴 전 장관은 처음부터 끝까지 경호원과 취재진에 둘러싸여 있어 접근이 쉽지 않았다.
클린턴 전 장관과 악수를 했다며 흥분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에게 쏟아진 질문은 “이메일 스캔들의 진실은 무엇입니까” “(경선 출마를 고려하고 있는) 조 바이든 부통령과 대화는 했습니까”라는 껄끄러운 것들이었다. 국무장관 재직 시절 비밀로 분류된 내용을 개인 이메일에 보관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클린턴 전 장관은 대권 후보로서 신뢰도가 추락하고 있다. 부동의 1위 자리가 흔들리자 바이든 부통령마저 경선에 뛰어들지 저울질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클린턴 전 장관을 쫓아다니던 인파의 관심은 갑작스레 나타난 헬기 소리에 분산됐다. 트럼프의 등장이었다.
◇트럼프와 악수하고 비웃는 사람들=막말과 기행으로 유명한 트럼프는 아이오와 축제의 등장도 요란했다. 흰 글씨로 자신의 이름을 새긴 검은색 헬기를 타고 클린턴 전 장관 일행 위를 세 바퀴나 선회한 뒤 인근 야구장에 내렸다. 트럼프는 그 자리에서 아이들에게 헬기에 타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빨간 모자를 눌러쓴 트럼프는 클린턴 전 장관이 들으라는 듯 “나를 쫓는 사람이 10배나 많다”고 허풍을 떨었다. 트럼프는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관람객들에게 고무된 듯 손가락을 들어 ‘브이(V)’ 자를 그리기도 했다.
트럼프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의 속내도 겉으로 환호하는 것과는 다른 것 같았다. 페이스 레인(37·여)은 트럼프와 악수한 뒤 그를 지지하느냐고 묻는 워싱턴포스트(WP) 기자에게 부정적으로 대답했다. 그는 “트럼프는 우스꽝스럽다. 이 축제가 난장판이고 우스꽝스러운 것처럼,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사랑해요, 트럼프”라고 외친 여성에게 WP 기자가 “정말이냐”고 묻자 “아뇨, 당신은 좋아해요?”라는 질문이 되돌아왔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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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트럼프, 첫 경선지 아이오와서 예비격돌
입력 2015-08-17 0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