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장지영] 예술은 불쌍하다?

입력 2015-08-17 00:10

세계 명문 발레단 가운데 하나인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의 수석무용수 서희(29)가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왔다. 올해 대관령국제음악제가 처음으로 안무를 위촉한 ‘볼레로’에 출연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1일 공연 후 취재진을 만난 서희는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 설립에 대해 이야기했다. 부유하지는 않지만 네트워크를 활용해 재능 있는 10대 발레 전공 학생들에게 해외연수 기회를 주고 싶다는 것이다. 서희는 만 30세가 되는 내년까지는 재단을 설립할 계획이다.

서희는 예술에 대한 개인 기부가 활발한 미국에 오래 살았다. 미국은 국가 단위의 예술 지원은 다른 나라에 비해 적은 편이지만 개인의 예술 지원이 매우 많다. 예술을 후원하는 것이 개인에게 자부심을 주며 사회적 지위를 높여준다는 인식이 일반화된 덕분이다.

뉴욕현대미술관이나 ABT 등 대형 예술기관(단체)의 경우 부유층이 이사회 멤버가 되기 위해 줄을 설 정도라고 한다. ABT는 좋아하는 무용수를 지정해 개인이 발레단에 기부하는 제도도 따로 시행하고 있다. 발레단 홈페이지의 무용수 소개란에는 후원자의 이름까지 나온다. 서희의 경우 골드만삭스 파트너를 역임한 사업가 데이비드 B 포드 부부의 후원을 받는다.

미국에선 부유층만이 아니라 일반인들 역시 예술 후원에 적극적이다. 특히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예술기관(단체)에 매달 조금씩 꾸준히 기부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 비교해 한국은 예술 관련 개인의 기부가 늘긴 했지만 아직은 미미하다. 게다가 한국에서 예술 관련 기부는 “어려우니 도와줘야 한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하다 보니 복지와 구휼 차원에서 논의되는 게 일반적이다.

한국에서 예술에 대한 개인 기부가 늘어나려면 인식 전환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즉 예술이야말로 우리 자신과 사회를 풍요롭게 만드는 필수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개인이 기쁘게 후원한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지영 차장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