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을 놓고 노사정은 평행선을 걷고 있다. 재계는 어려운 경영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고용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기 변동에 따라 쉽게 채용하고 쉽게 해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정부는 비정규직 문제를 풀려면 정규직의 ‘양보’가 필수적이라고 본다. 정규직 임금을 깎아 만든 재원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비정규직 보호 수준을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노동계는 일방적 희생 강요는 안 된다고 반발하며 근로자도 기업의 주체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시장의 세 기둥이 접점 없는 시각 차이를 보이면서 개혁은 답보 상태다. 노사정위원회는 지난 4월 8일 한국노총이 결렬을 선언한 이후 4개월 넘도록 중단돼 있다.
정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양극화, 그에 따른 비정규직 보호 필요성을 인정한다. 정규직은 임금 수준이 굉장히 높고 과잉보호를 받고 있어 기업이 정규직 채용을 꺼리는 통에 비정규직 일자리만 양산된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정부가 말하는 ‘정규직의 양보’는 연공 중심의 임금체계를 성과급·직무급 등으로 바꾸고 임금피크제를 확대하는 것이다. 정규직에게는 더 열심히 일하고 임금은 적게 받으라는 말과 다름없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16일 “정규직 임금체계를 바꾸면 그 재원을 토대로 비정규직 근로조건을 개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임금체계 개편을 통해 중소기업이나 하도급업체를 위한 재원이 확보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규직이 양보해 임금 삭감을 받아들여서 마련된 재원이 온전히 비정규직을 위해 쓰인다는 보장은 없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상시적 업무를 하는 비정규직은 가급적 정규직으로 전환토록 유도하는 등 고용 안정성을 높이는 쪽으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다”며 “사내유보금도 투자와 고용에 쓸 수 있게 세제 혜택을 주는 등 적극 유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가이드라인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 정부가 내놓는 경제적 유인책은 이해득실을 따져 기업이 자율적으로 채택하느냐, 마느냐를 선택할 문제다.
재계는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소극적이다. 노사가 자발적으로 임금·근로시간 등에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이를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업 경영에 정부가 간섭하지 말라는 소리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비정규직 문제는 시장에서 움직이도록 만드는 게 세계적 추세”라고 말했다. 근로자의 희생이든 뭐든 간에 비정규직을 모조리 정규직으로 만드는 방법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 재계 입장이다.
반면 노동계는 경영 실패의 책임, 저성장 위기의 고통을 노동자에게 떠넘겨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사용자가 노동자를 인정하면 무조건 해고가 아니라 순환휴직 등 다양한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경제 여건이 바뀌었으니 이에 맞게 노사관계가 변해야 한다고 본다. 사용자가 노동자를 기업의 주체로 인정해야 노사가 함께 저성장의 위기를 이겨낼 수 있다는 논리에서 ‘노조의 경영 참여’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판 심희정 기자 p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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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8-17 0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