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유호열] 북한은 4대 미몽에서 깨어나야

입력 2015-08-17 00:30

광복 70주년은 경축할 일이나 남북한이 통일될 때까지는 진정한 광복이라고 할 수 없다. 일제 강점 40년에 분단 70년까지 우리는 20세기 대부분을 단절이라는 비정상의 역사를 살아왔다. 이처럼 왜곡된 역사를 치유하기 위해 남북한은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로 나아가는 노력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

8·15 경축사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단호하면서도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최근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을 규탄하면서 북한의 반통일적인 이질화 책동은 결국 고립과 파멸을 자초할 뿐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동시에 박 대통령은 북한에 아직 기회의 창이 열려 있음도 분명히 했다.

북한은 지난 70년 동안 스스로 주체 강국이라고 주장해 왔다. 김일성의 주체사상이나 김정일의 선군정치, 그리고 김정은의 핵·경제 병진 노선 등은 이러한 주체적인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핵심 구상이었다. 그러나 70년 후의 현실은 북한 지도자나 정권 차원에서 꿈꾸었던 그런 이상향의 세계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김정은 체제가 시달리는 네 가지 미몽이 있다. 첫째, 그들은 21세기 세계화의 시대에도 그들 스스로 자력갱생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지금 세계는 FTA(자유무역지역), TT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세계은행,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등 무역이나 금융이 그물망처럼 촘촘히 얽혀 있는 체제에서 생존, 발전하고 있다. 대중(對中) 무역의존도 90%에 육박하고, 국제 시세가 요동치는 지하자원 수출이나 각국 경기에 민감한 인력 수출에 의존하는 북한 경제의 전망은 결코 밝지 못하다.

둘째, 북한은 냉전기에 진영논리로 통하던 등거리 외교가 초국가 시대, 신형 거버넌스의 국제관계에서도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한마디로 우물 안 개구리 식 발상이다. 이란 핵 문제 해결이나 쿠바의 개방화 정책에서 보듯 이제 북한이 구가하는 방식의 등거리 외교는 먹혀들지 않는다. 각국의 지도자는 물론 주요 이해당사자들이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탄력적으로 융복합 관계가 형성되는 새로운 구도에서 북한만이 나 홀로 길을 걷고 있는 형국이다.

셋째, 북한은 아직도 남남갈등이 북한의 대안을 열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적당한 도발과 적절한 수준의 위협이 남한 내 각 집단 간에 이해충돌을 야기하고 이 과정을 자신들이 조정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6·15 정상회담 이후 천안함 폭침 때까지 약 10년간 한국사회는 햇볕정책과 반햇볕정책 지지자들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새 정권이 등장할 때마다 새로운 대북 정책이 제시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북한의 실체를 정부나 국민들도 속속들이 파악하게 됨으로써 북한이 기대하는 것처럼 남남갈등이 정책의 근본을 훼손할 정도로 악화되지는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북한은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을 극도로 경계하고 우려하고 있다. 동서독 통일 과정을 염두에 둔 듯하지만 독일 통일의 진실은 서독에 의한 흡수통일이라기보다 동독 주민들의 통일혁명 결과 동서독 간 합의 통일이었다. 더구나 한반도 상황은 독일보다 훨씬 복잡하여 북한 주민 입장에서는 자율성을 훨씬 더 확보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결론이다.

북한은 그들의 도발 위협에 남한은 물론 미국이나 심지어 중국마저 굴복할 것이라고 믿는 미몽과 남한에 의해 흡수통일당할 것이라는 악몽에서 하루 속히 벗어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물 밖 세상이 얼마나 넓고 좋은지 거기에 맛들여야 한다. 그러면 남북 간 대화와 교류·협력을 조속히 재개하는 것이 북한이 꿈꾸는 체제 생존과 정권 안정을 위한 첩경임을 알게 될 것이다.

유호열(고려대 교수·북한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