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탈모도 외모장애, 보험 혜택·장애기준 조정 절실”

입력 2015-08-18 02:41
중증 원형 탈모증을 앓고 있는 윤사비나씨가 최근 국회에서 열린 ‘탈모환자 치료지원 방안’ 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대한모발학회 제공
다양한 탈모증 종류.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안드로겐성 탈모, 원형 탈모, 휴지기 탈모, 전두 탈모 환자의 모습.
“13년 전 갑자기 찾아온 탈모는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어요. 생명에 지장을 주는 질병이 아니라고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 많지만, 탈모가 병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 순간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탈모 치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고 탈모인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확대되길 기대합니다.”

연극 연출가이자 배우인 윤사비나(36·여)씨는 최근 국회에서 열린 대한모발학회 토론회에서 이렇게 하소연했다. 그녀는 20대 초반 교통사고 후 머리카락은 물론 온 몸의 털이 몽땅 빠져버리는 증상을 겪었다. 윤씨의 병명은 면역체계 이상으로 생기는 ‘원형 탈모증’. 그것도 치료가 쉽지 않은 ‘전두(全頭)·전신(全身) 탈모증’이었다. 각종 화장품 오일부터 피부가 아리는 마늘즙까지 갖은 방법을 동원해 치료해봤지만 탈모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10년을 넘기면서 윤씨는 탈모인임을 당당히 밝히고 연극인의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모발 상실로 인한 생활 불편과 사회적 편견은 여전히 그녀를 힘들게 하는 부분이다.

“여성 탈모 환자들의 가장 큰 바람은 탈모 증상을 들키지 않는 겁니다. 탈모란 이유로 취업부터 결혼까지 제한받고, 남들 앞에 나서는 것 자체가 두려운 게 현실이니까요.”

모발이 없어 기능적으로 겪는 어려움도 크다. 여름철 따가운 햇볕에 두피가 화상을 입어 벗겨지기 일쑤다. 황사가 있는 날에는 먼지를 걸러주는 속눈썹이 없어 외출 자체가 불가능하다. 윤씨는 “우리처럼 중증 탈모 환자에게 필수품인 가발을 의료보장구로 등록하고, 장애를 인정하는 등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탈모증은 비정상적으로 모발이 빠지거나 정상적으로 있어야 할 곳에 모발이 존재하지 않는 질환이다. 원인과 증상에 따라 안드로겐성 탈모, 중증 원형탈모, 발모벽, 흉터 탈모, 외상성·화학적 탈모, 휴지기 탈모 등으로 구분된다(표 참고).

대한모발학회는 국내 탈모 인구가 10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2011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집계 결과 이런 탈모 환자의 절반 가까이(45.8%)는 20∼30대 젊은층이었다.

윤사비나씨처럼 심각한 전두·전신 탈모 환자는 1만∼2만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몸의 털이 다 빠지는 전두·전신 탈모는 대개 원형 탈모에서 시작된다. 처음에는 동전 모양으로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해 한 달 만에 완전히 없어진다. 사춘기 전에 원형 탈모 증상을 보인다면 전두·전신 탈모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탈모 원인은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으나, 면역체계 이상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정된다.

가톨릭대 성바오로병원 피부과 강훈 교수는 “우리 몸의 면역체계에 이상이 생기면 내부세포를 병균 같은 외부물질로 착각해서 공격해 죽인다”며 “원형 탈모 역시 이로 인해 털이 자라는 모낭세포를 외부물질로 잘못 인식하고 무차별 공격하기 때문에 머리카락이 급격히 빠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우리 사회에서 탈모는 외모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젊은층일수록 탈모 스트레스가 많고 이로 인한 정신적·사회적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전두·전신 탈모는 다른 탈모 질환과 달리 의학적 치료가 상당히 어렵다. 전두 탈모의 75%는 현재의 의학 치료로는 다시 발모되지 않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이들에게 가발 착용은 필수다.

문제는 가발 구입에 따른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개당 30만∼100만원을 호가하는 데다 반복 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해당 환자와 모발학회는 “가발은 의족·의수처럼 정상 사회생활을 가능케 하는 의료보장구로 인정돼야 한다”며 건강보험 적용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가발이 보험 적용을 받는 의료보장구로 등록되려면 중증 원형탈모가 ‘안면(외모)장애’로 인정받아야 하지만 현행 장애등급 판정기준에서는 쉽지 않다. 안면장애의 경우 모발 선(헤어라인)을 기준으로 정해지는데, 머리털이 있는 두부는 현행 법규에 따른 노출부가 아니어서 장애등급 범주에서 제외돼 있다. 모발학회는 “안면장애 범주에 ‘모발 결손’이 포함돼 있지만 탈모증에 의한 것이 아니라 반흔(상처 자국)을 동반한 모발결손에 국한돼 있다”며 “이런 안면장애 판정기준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현행 장애등급 판정 개요에서 ‘안면부’를 두부, 안면부, 경부(목) 등 노출되는 부분이라고 정의해 놓고 장애등급 기준에서는 두부, 즉 머리를 제외하는 것은 판정기준 자체의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또 “국가배상법, 자동차보험 진료수가 분쟁심의회에서는 머리에 손바닥 크기 이상 상처 자국이 있거나 모발이 3분의 2 이상 빠져 원상회복이 힘든 경우 외모 장해율 60%를 인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해외의 경우 영국 뉴질랜드 등이 중증 탈모환자의 가발 비용 일부 혹은 전부를 국가에서 지원해 주고 있다. 미국은 개별 보험사에서 가발 구입 보조금을 지원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장애인에 대한 정의는 장애인복지법을 따르는 만큼 의학적 검토와 함께 지속적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밝혔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