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면피성 사죄] ‘전후 70년 담화’ 속내는… 아베, 3자적 시각 ‘어쩔 수 없는 전쟁’ 부각

입력 2015-08-15 02:38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14일 발표한 전후 70년 담화(아베 담화)에서 일본은 어쩔 수 없이 전쟁에 내몰렸다고 주장했다. 또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에 의한 피해에 대해서는 ‘과거부터 사죄해 왔다’는 식으로만 거론했다. 특히 사죄나 식민지배와 침략 등에 대해 ‘주체’를 명시하지 않고 제3자적 관점에서 언급하는 데 그쳤다. 전체적으로는 사죄나 식민지배, 침략, 전시하 여성 문제 등을 언급하면서도 진정한 사죄의 마음이나 반성을 담지 않은 ‘물타기’성 담화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식민지배와 침략조차 “떠밀려서” 주장=아베 총리는 “구미 여러 나라가 식민지 경영을 통해 경제 블록화를 추진하면서 일본은 고립감을 심히 느껴 세계 대세를 따랐다”고 주장했다. 또 “외교적, 경제적 막다른 골목에 처하게 됐다”고도 했다. 결국 서양 국가들 때문에 일본으로서는 할 수 없이 식민지배와 침략에 나섰다는 궤변인 것이다.

이는 아베 정권이 내세워온 ‘일본은 적극적인 개전 의지가 없었다’는 주장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특히 ‘가해 행위’를 명확하게 표현한 역대 정권들의 말을 뒤집는 것이기도 하다. 전후 50년 담화인 무라야마 담화(1995년)의 경우 “우리나라는 과거 국가 정책을 그르쳐 전쟁의 길로 나아가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에 손해와 고통을 줬다”고 자체적인 정책 실패로 인한 개전임을 명시했다.

아베 총리는 한일병합의 발판이 된 러일전쟁을 미화하기도 했다. 그는 “(일본은) 아시아에서 최초로 입헌정치를 세우고 독립을 지켜냈다”며 “일러전쟁은 식민지 지배 하에 있었던 많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인들에게 용기를 줬다”고 담화에서 밝혔다.

◇‘직접 사죄’ 한마디도 없어=아베 총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역대 내각’의 입장을 들어 ‘대리 사과’를 하는 데 그쳤다. “앞선 내각들이 사죄의 마음을 표명해 왔다”는 식으로 일관해 사실상 무늬만 사과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반면 무라야마 담화와 전후 60년 담화인 고이즈미 담화(2005년)에서는 똑같이 “의심할 여지도 없는 고통과 손해를 끼친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다시 한 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마음으로부터 사죄를 표명한다”고 명시했다.

다만 아베 총리는 “국내외에서 숨진 모든 사람들의 목숨 앞에 깊이 머리를 숙이고, 통석의 염(念)을 나타낸다”고 언급하며 일부 반성의 뜻을 나타냈다. 하지만 ‘통석의 염’이란 용어 역시도 ‘남이 당한 안타까운 일을 이해하고 위로한다’는 제3자적 언급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아울러 ‘국내외에서 숨진 모든 사람들’이란 표현으로 전쟁에서 숨진 자국민과 침략과 강제동원으로 희생된 다른 나라 국민들을 같은 반열에 놓고 애통한 마음을 표한 것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언급도 한참 후퇴=아베 총리는 일본군 위안부 여성을 지칭한 듯 ‘전시하 많은 여성들이 존엄이나 명예가 깊이 상처를 받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이러한 여성들의 마음에 언제나 의지할 수 있는 나라로 있고 싶다. 21세기인 만큼 여성의 인권이 상처 입는 것이 없는 세기를 만들기 위해 세계를 리드해 왔다”고 주장했다.

무라야마 담화와 아베 담화에는 없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언급해 전향적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동원 사실을 직시한 1993년의 고노 담화에 비해서는 역시 후퇴한 내용이다.

오히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여성 인권과 관련된 문제여서 국제적으로 큰 방향을 얻어가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담화에 ‘억지로 끼워 넣기’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 강제동원이나 해결책에 대한 언급이 없고 그들에 대해 구체적 사과 메시지가 없는 것도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손병호 이종선 기자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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