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는 결국 우리 모두를 실망케 했다. 한국과 여러 선진 우방국, 그리고 전 세계 역사학자들이 일본 과거 침략사에 대한 아베 총리의 진심어린 사죄를 기대했으나 거부당했다. 명확한 반성과 사죄 없이 ‘말의 성찬’으로 일관한 아베 총리 개인의 ‘감상문’이란 느낌을 줬다. 역대 내각의 담화를 부인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란 평가가 나온다. 아베 내각이 전 세계인의 바람을 저버리고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변신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아베 총리에게 무라야마 총리 담화(1995년) 등 역대 내각 담화의 역사인식을 확실하고 분명한 언어로 표명해 줄 것을 촉구해 왔다. 그러나 아베 담화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무라야마 담화의 4개 핵심 키워드(식민지 지배, 침략, 반성, 사죄)를 모두 거론했지만 실제 내용은 전혀 다르다. 우선 식민지배와 침략의 주체를 명시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과 현 내각이 아닌 과거 내각의 입장을 빌려 ‘과거형’으로 사죄를 언급하는 데 그쳤다. 이중적 태도를 담은 꼼수이자 교언(巧言)이라 하겠다. 거기다 전후 세대에게 사죄할 숙명을 지워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어처구니가 없다. 과거 이웃 침탈에 대해 “역사에는 마침표가 없다. 항구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한 독일 정부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역사인식이다.
아베 담화가 조선 합병의 발판이 된 러일전쟁을 미화한 데 대해서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식민지배 하에 있던 많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인들에게 용기를 줬다니 도대체 이런 망발이 없다. 러일전쟁에서의 일본 승리는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촉진했을 뿐 주변국을 도탄에 빠뜨렸다는 사실을 정녕 모른단 말인가. 우리 정부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아베 총리는 ‘존엄을 상처받은 여성’이라는 한마디로 교묘하게 피해갔다.
아베 내각이 이런 식으로 우리 정부의 진정성 있는 반성을 일언지하에 거부했다면 적극적인 양국 관계 정상화에 관심이 없다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일본이 웬만한 수준으로라도 성의표시를 할 경우 올해 후반기 한·일 정상회담과 한·중·일 정상회담을 통해 동북아 화해 협력의 분위기를 조성하려 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전화를 걸어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에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 데 대해 “진정성 있는 행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답했다.
우리 정부로서는 섭섭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일본에 막연한 기대를 품거나 감정적 대응을 앞세울 필요가 없다. 의연한 자세로 동북아 정세를 주도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설] 명확한 사과 없이 말의 성찬에 그친 ‘아베담화’
입력 2015-08-15 0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