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우리는 아직 해방되지 못했습니다”

입력 2015-08-15 02:32 수정 2015-08-15 18:12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가 1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국제 학술 심포지엄에서 피해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라는 해방됐지만 우리는 아직 해방되지 못했습니다. 일본은 우리 소녀들을 끌고 가서 희생시킨 것을 명백하게 사죄하고 우리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89) 할머니의 올해 광복절은 지난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일본 정부의 태도 변화를 기대했지만 결과는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14일 전후 70주년 담화에서 위안부 문제를 ‘존엄을 상처받은 여성’이란 말로 에둘러 피해 갔다. 할머니가 기다리던 ‘사죄’와는 거리가 멀다. 1926년생, 우리 나이로 아흔인 김 할머니는 또다시 거리로 나가 마이크를 잡아야 한다.

경남 양산에서 태어난 그는 14세이던 1941년 군복 공장에 취직시켜준다는 말에 속아 위안부로 끌려갔다. 중국 광둥과 홍콩,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와 자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지로 끌려다니며 고초를 겪었다. 위안부로 착취당했을 뿐 아니라 강제 헌혈까지 해야 했다.

할머니는 1993년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처음 피해 증언을 했다. 이후 미국 유럽 일본 등 세계를 돌며 피해 사실을 알려 왔다. 지난 6월엔 미국에 가서 “설령 과거에 일본 천황이 했던 일이라도 현재 아베가 정권을 잡고 있으니 마땅히 자기 조상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 하고 법적 사죄와 배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이런 활동을 후손을 위한 일로 생각한다. 지난 6월 서울시 여성상을 수상하면서 “아이들에게 평화로운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고 했다. 분쟁 지역 피해 어린이, 평화 활동에 나서려는 학생들 장학금으로 써달라며 평생 모은 재산 5000만원을 기부했다. 2009년에도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건립기금으로 1000만원을 내놨다. 2012년에는 각종 폭력에 고통 받는 여성을 위한 ‘나비 기금’을 발족시켰다.

할머니의 소원은 살아서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받는 것이다. 김 할머니는 이날 여성가족부가 주최한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좋은 소식을 듣고 죽어야 할 텐데 아직 산 넘어 산”이라고 했다.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위안부 피해자는 현재 47명이 생존해 있다. 피해자로 등록된 238명 가운데 191명이 세상을 떠났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