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리얼디엠지프로젝트’… 국내외 작가 49명(팀)참여

입력 2015-08-17 02:48 수정 2015-08-17 14:35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금학로 일대에서 열리고 있는 ‘리얼디엠지프로젝트 2015’는 올해 처음으로 주민의 일상공간인 상점, 시장, 터미널, 거리 등에 현대미술 작품을 전시함으로써 주민과 호흡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강현아 작가가 ‘동송DMZ생태관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왼쪽 사진). 텃밭에 쳐진 철책에 착안해 마을 공간에 가상의 DMZ를 꾸몄다. 오른쪽은 전시공간으로 활용된 여인숙. 여인숙 내 3개의 방과 마당에 작가들의 작품이 설치돼 있다.
전시공간으로 활용된 여인숙. 여인숙 내 3개의 방과 마당에 작가들의 작품이 설치돼 있다.
“화면이 그리 빨리 돌아가니 뭔 내용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취지야 좋지만….”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금학로의 명찰가게 유신사 안종섭(62) 사장은 “미술이 좀 쉬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의 가게 옆 휴대전화 대리점 쇼윈도에 걸린 강신대 작가의 ‘#DMZ’ 영상 작품을 두고 하는 말이다. 구글에서 ‘DMZ’를 치면 실시간으로 검색되는 이미지를 영상으로 보여준다. 그의 말마따나 화면은 0.1초마다 바뀌며 정신없이 돌아간다.

올해 4회째인 ‘리얼디엠지프로젝트’가 비무장지대(DMZ) 접경마을인 동송읍에서 ‘동송세월’(기획 한금현·김남시·김선정·임혜진)이라는 부제를 달고 13일 개막했다. 아트선재센터의 기획사 ‘사무소’가 주관하는 이 행사에는 49명(팀)의 국내외 작가가 참여해 한반도 비무장지대가 갖는 역사·장소적 의미를 영상, 설치, 회화 등 다양한 현대미술을 통해 보여준다. 동송읍 금학로 일대 터미널, 카페, 한의원, 옷가게, 전통시장, 심지어 허름한 여인숙까지 주민과 휴가 나온 장병들의 생활공간 곳곳에 작품이 걸렸다.

김선정 리얼디엠지프로젝트 예술감독은 “지난해까지 민통선 내 안보관광 시설을 빌려 전시장으로 쓰다보니 정작 주민들은 작품을 접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지역밀착행사로 거듭나기 위해 동네의 상업시설을 활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카페, 옷가게, 여인숙까지 전시장으로=‘필승체육사’ 주인 류선구(72)씨는 신지선 작가의 파트너가 됐다. DMZ에 서식하는 무당개구리, 고라니 등을 작가가 디자인해 패치로 만들면 이걸 ‘오버로크(휘갑치기)’하는 작업을 했다. 정원연 작가는 코바늘로 실 뜨개질한 알록달록 꽃다발을 사진관의 촬영 소품으로 내놓았다. 군인들은 면회 온 가족, 애인과 그 꽃다발을 목에 걸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강현아 작가의 ‘동송DMZ생태관광’은 철책이 쳐진 텃밭을 가상의 DMZ로 만든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텃밭에 면한 주택의 벽에는 DMZ 동식물 그림을 걸었는데, 철책에 매단 망원경으로 마치 생태관광 하듯 구경할 수 있다.

프랑스 작가 알렝 드클레르크가 철원중고총동문회 사무실에 설치한 ‘헤드쿼터’는 남북대치의 접경지역에서 안보관광이 이루지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이국인의 시선으로 패러디한 영상작품이다. 군 참호시설을 지나 마지막에 나오는 헤드쿼터가 휴가 나온 군인들이 전쟁게임에 몰두하는 동송읍의 PC방인 것이다. 금학로 남북 1㎞를 따라 행사 포스터가 붙은 옷가게, 카페, 보험사 및 부동산 사무실 등이 이번 행사의 전시장이다.

◇주민 체감과 동떨어진 작품들=일상 공간에 작품이 걸렸다고 해서 주민 공감과 직결되는 건 아니다. 상세한 설명을 듣지 않으면 맥락을 알 수 없는 작품이 부지기수이다. ‘더착한커피’ 가게 앞에는 채송화, 천일화 등이 피어있는 이동식 화단이 있다. 얼핏 가게 장식용으로 보이지만 ‘이사하는 정원-DMZ’라는 작품이다. 휴가 나온 군인들의 군화에 묻혀진 흙을 수개월간 수집해 그곳에 있던 씨를 발아시켜 만든 정원이다.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손바닥만한 안내문을 읽어봐야 한다.

동송읍은 철원의 상업문화중심지라고 하지만 평생 미술관 구경 한번 해보지 못한 주민들이 대다수다. 이들에게 영상, 설치, 음향 등 현대미술 작품은 낯설 수밖에 없다. 야구선수의 스윙이나 녹아내리는 내리는 아이스크림 영상, 수족관에 담긴 물을 끌고 가는 퍼포먼스에서 남북 대치 지역에서 사는 자신들의 삶을 연결시키기는 쉽지 않다.

철원 출신의 김동일 강원도의회 부의장은 “설명을 자세히 읽으면 알겠지만 그렇게 읽으면서 미술작품을 보는 습관이 안돼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더러 공감이 가는 작품도 있지만 대체로 너무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민들이 민통선 안에 농사지으러갈 때 소지하는 ‘민통선출입증’이나 이곳에 허다하게 많은 ‘지뢰밭 표시’ 같은 게 작품으로 나왔으면 더 반가웠을 것”이라고 했다.

미술 기획자 A씨는 “지역 밀착형 전시가 되기 위해서는 난이도를 낮추고 기획단계에서부터 주민을 참여시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수막 하나 걸리지 않아 개막 당일인데도 전시 자체를 모르는 주민도 많았다. 8월 23일까지. 29일부터 석 달간 서울 아트선재센터에서 같은 작품으로 전시가 이어진다. 개별 관람은 무료, 전시 투어 프로그램은 2만5000원(02-739-7098).

철원=글·사진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