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공탁 개정안 시행 40일 넘도록 지연, 속타는 피고인들 “언제나…”

입력 2015-08-15 02:32

“공탁규칙 개정안은 대체 언제 시행되나요? 시행한다고 한 지 한 달도 넘었는데….”

요즘 법원행정처 사법등기심의담당실에는 이렇게 토로하는 민원인 전화가 몇 달째 끊임없이 걸려오고 있다. 피해자의 주민번호 등 개인정보를 몰라도 공탁금을 낼 수 있게 하는 ‘공탁규칙 개정안’의 시행이 지연되자, 초조해진 형사 피고인들이 법원에 문의전화를 거는 것이다. 한 행정처 직원은 “‘조금 더 기다리셔야 한다’고 해도 답답한지 계속 하소연하는 분이 많다”고 전했다.

형사 공탁은 피해자와 합의하지 못한 피고인이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일정 금액을 법원에 맡기는 제도다. 공탁 여부는 피고인의 양형을 결정할 때 참작 요소가 된다. 그동안 형사사건에서 공탁을 하려면 피해자의 이름, 주민번호, 주소 등 정확한 개인정보가 필요했다.

지난 2월 대법원은 이런 개인정보를 몰라도 사건번호 정도로 형사 공탁이 가능케 하는 ‘형사공탁 규칙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피해자 개인정보를 보호해 ‘2차 피해’를 방지하면서 피고인이 좀 더 손쉽게 공탁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달 6일부터 시행키로 했던 이 개정안은 시행을 한 달여 앞두고 ‘급제동’이 걸렸다. 개인정보 없이 받은 공탁금을 피해자에게 내줄 때 신원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문제점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법원 관계자는 “공탁금을 내줄 때 피공탁자와 피해자가 일치하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피해자 인적사항은 수사기관이 갖고 있다”며 “검찰 등 관계기관과 세부 사항을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형사 피고인들이 개정안 시행을 애타게 기다리는 이유는 공탁을 통해 조금이나마 유리한 형량을 받기 위해서다. 그간 피고인들은 공탁을 위해 피해자 개인정보를 알아내려고 변호사에게 대신 접촉을 부탁하는 등 여러 방법을 강구해 왔다. 서울의 한 변호사는 “합의를 안 해주는 피해자가 주민번호 같은 민감한 정보를 알려줄 리 있겠느냐”며 “피고인 입장에선 개정안 시행이 절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변호사들도 이를 기다리긴 마찬가지다. 한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왜 공탁을 못하느냐’며 압박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해 6월 대법원과 가진 정기 간담회에서 “피해자 인적사항을 알 수 없는 경우에도 공탁이 가능하게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공탁제도가 남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반성의 태도가 보이지 않는데 ‘공탁했으니 선처해 달라’고 주장하는 피고인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형사사건 피해자가 됐던 A씨(38·여)는 “공탁을 원하는 피고인이 연락해오는 것도 두렵지만, 쉽게 공탁해 감형 받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고 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