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의 두 얼굴] 뜨면 위험한 ‘나쁜 비행’

입력 2015-08-15 02:36
10대 미국 소년이 개발한 ‘총 쏘는 드론’이 조작에 따라 반자동 권총을 발사하고 있다. 유튜브
스페인 출신의 가수 엔리케 이글레시아스가 지난 5월 31일 멕시코 공연에서 무대 위로 날아든 드론을 잡으려다(위 사진) 회전날개에 손가락을 베는 사고를 당했다. 손에서 새어나온 피로 벌겋게 물든 그의 티셔츠는 이 공연을 지켜보던 전 세계 사람들에게 드론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CNN방송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정원에서 지난 1월 26일 발견된 이 드론은 한 국립지리정보국 직원이 인근 아파트에서 술에 취해 날린 것으로 드러났다. 뉴욕타임스
일본 도쿄에 있는 총리 관저 옥상에서 4월 22일 정체불명의 드론이 발견되자 경찰과 정부 관계자들이 현장조사와 안전조치를 취하기 위해 급히 보호 천막을 두르고 있다. BBC방송
지난 3월 15일(현지시간) 고요한 햇살을 머금고 세계 각지에서 날아오는 항공기들을 맞아주던 ‘유럽의 관문’ 영국 런던 히스로 공항의 평화로운 아침은 갑작스럽게 날아든 한 검은 물체로 인해 여지없이 깨졌다. 승객 100여명을 태우고 518m 상공에서 착륙하려는 에어버스 A320 항공기의 기장은 정체불명의 물체가 기체 15m 거리까지 접근하자 깜짝 놀라 관제탑에 무전을 보냈다. 영국 항공관제위원회(UKAB)는 “직사각형에 프로펠러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는 항공기 조종사의 진술을 토대로 이 물체가 소형 드론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드론을 조종하는 사람을 찾지는 못했다.

지난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방문객이 많았던 이 공항에서는 지난해 7월에도 착륙하려던 또 다른 A320 항공기에 드론이 약 6m 거리까지 접근했다. 미국에서도 지난 9일 뉴저지주 뉴어크 공항에 착륙을 시도하던 민간 여객기 4대의 주변에 드론이 출몰해 미국 연방항공청(FAA)이 조사에 나서는 등 세계 각국의 공항들은 드론 비상이 걸렸다.

드론이 민간에 확대되면서 이처럼 수많은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악한’ 드론의 모습도 속속들이 나오고 있다.

◇‘민폐’ 수준 넘어 ‘공중안전 위협’까지=지난달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고속도로 인근에서 산불이 발생해 고속도로에 주차된 자동차 수십대가 불타고 약 700명이 대피했다. 피해가 이처럼 커진 것은 건조한 날씨 탓도 있지만 드론 때문이기도 했다. 화재를 촬영하기 위해 띄운 드론들 때문에 정작 진화를 해야 할 소방 헬리콥터가 한동안 현장에 진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화재나 건물 붕괴 등 대형 재난 현장에서 언론사들의 취재를 위한 촬영에 활용되는 드론이 역설적으로 구조 헬기의 진입을 막는 ‘민폐’로 작용하는 것은 물론 자칫 구조 헬기와 충돌해 ‘2차사고’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람이 여럿 모인 공간에서 드론이 추락 등 사고를 일으킬 위험도 있다. 지난 5월 미국에서는 메모리얼데이(현충일)를 맞아 행사에 모인 군중 위로 행사 축하를 위해 날린 드론이 추락해 사람들이 부상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5월 말에는 멕시코에서 열린 스페인 출신 라틴팝 스타 엔리케 이글레시아스 공연 도중 관람객이 띄운 소형 드론이 무대 위로 날아와 이글레시아스가 드론 프로펠러에 손가락을 다치는 사고도 있었다.

◇‘마약 밀반입 드론’부터 ‘총 쏘는 드론’까지 범죄 악용 우려도=지난 4일 미국 오하이오주 맨즈필드 교도소에서는 교도소 안으로 날아온 드론이 교도소 한가운데 헤로인과 마리화나 등이 담긴 마약 꾸러미를 떨어뜨려 마침 마당에 나와 있던 재소자들 사이에 일대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교도소 북쪽 운동장에는 75명이, 남쪽 운동장에는 130명이 있었다. 조사 결과 이 꾸러미는 외부인이 한 재소자를 위해 드론에 실어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심지어 최근 미국의 한 10대는 총이 발사되는 드론을 자체 제작해 관계기관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코네티컷주 클린턴에 사는 오스틴 호와트가 유튜브에 올린 14초 분량의 영상에는 숲을 배경으로 프로펠러 네 개가 달린 드론이 공중에 떠 있고, 여기에 장착된 반자동 권총이 네 차례 발사되는 장면이 담겼다. FAA가 모형 항공기 조종과 관련된 법을 어겼는지를 조사하고 있지만 아직 총이 발사되는 드론을 직접 규제할 수 있는 법은 없는 실정이다. 이처럼 민간에서는 드론이 빠르게 보급되고 드론의 쓰임새도 다양화되고 있지만 그에 비해 드론을 규제하는 관련 법들은 더디게 진행되면서 안전 문제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올해 1월 미국 백악관 건물에 드론이 충돌한 것을 비롯, 4월에는 원전 재가동 정책에 반대하는 한 40대 남성이 도쿄 총리 관저에 미량의 방사성 물질을 함유한 드론을 날려보내는 등 각국에서 국가 중요 시설에 드론이 무단 침입하는 사례도 속속 나오고 있다. 보안상 허점을 이용해 무기가 장착된 드론을 활용한 요인 암살 우려도 있는 셈이다.

지난달 영국의 한 누드비치에서는 촬영 장비가 부착된 드론이 출몰하는 등 불청객처럼 여기저기 등장하는 드론에 의한 사생활 침해 우려도 현재진행형이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