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전·현직 기자가 광복 70주년을 이틀 앞둔 13일 서울의 정부 산하기관 회의실에서 설전을 벌였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 언론의 인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장면이었다.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는 1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동북아역사재단 11층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1991년 종군 위안부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최초 보도한 인물이다. 우에무라 전 기자는 지난 24년간 일본 극우세력으로부터 ‘기사가 날조됐다’ ‘매국노다’ 등의 비난에 시달렸다고 했다. 최근에는 그가 시간강사로 근무하는 대학과 딸에게도 협박이 가해지고 있다며 “날조를 주장하는 교수와 언론인을 상대로 도쿄와 삿포로에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이어 “질 수 없는 싸움이므로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도 표명했다.
그러자 구로다 가쓰히로 산케이신문 기자가 기자회견 장소를 문제 삼았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 회의실에서 이런 기자회견을 하는 게 모양새가 좋지 않다”며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것 아니냐는 오해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매체를 통한 대응이 아닌 소송은 신중했어야 했다. 내가 그 입장이었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구로다 기자는 독도·위안부 문제와 관련, 여러 차례 망언한 인물이다. 그는 한국 기자들도 들으라는 듯 한국어로 말했다.
이에 우에무라 전 기자는 “나는 한국 정부의 앞잡이가 아니고 한국 정부를 위해 위안부 기사를 쓴 것도 아니다”고 맞받았다. 또 “(구로다 기자는) 이런 협박을 받은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가족까지 협박받는 상황이므로 사법적인 싸움을 하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위안부 문제를 보는 다른 일본 언론의 시각도 우리와 온도차가 있었다. 마이니치신문의 기자는 위안부 할머니 증언에 관한 객관적인 사실 조사가 필요했다는 취지의 질문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김 할머니의 증언이 바뀌었다는 얘기도 했다. 도쿄신문 기자는 “(피해 보상을 위한) 아시아여성기금이 마련됐으나 한국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아 20년간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다”고 했다.
우에무라 전 기자는 “내가 쓴 기사에 어디 틀린 곳이 있느냐”면서 “할머니의 증언에 기본적인 변화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또 “양국의 지도자끼리 대화가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한·일 관계를 개선하는 게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우에무라 전 기자 본인이 자청했다. 그가 한국에서 기사를 쓴 경위와 그간의 비난, 협박 등에 대해 밝힌 것은 처음이다. 14일에는 여성가족부가 주최하는 위안부 문제 관련 국제 학술 심포지엄에 참석한다.
우에무라 전 기자는 15일 충남 천안 망향의동산에서 김 할머니를 성묘한다. 16일에는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이끈 윤정옥(90) 이화여대 명예교수를 찾아 인사할 예정이다. 그는 “김 할머니의 묘 앞에서 저널리스트(언론인)로서 다시 한번 위안부 문제에 착실히 마주하겠다는 것을 전하겠다”면서 “그것이 윤 교수의 협력으로 할머니의 존재를 알린 1보 기사를 쓴 저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
[광복 70년] 우에무라 前 아사히신문 기자 방한 “日 극우세력 협박에 끝까지 싸우겠다”
입력 2015-08-14 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