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춘 체포동의안 통과 배경] 혁신 외쳐 온 여야 ‘방탄 역풍’ 우려… 압도적 ‘찬성’

입력 2015-08-14 02:18
박기춘 의원이 13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을 앞두고 신상발언을 마친 뒤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구성찬 기자
박기춘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1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혁신 경쟁을 벌이고 있는 여야 모두 ‘제 식구 감싸기’란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겠다고 공언해 놓고 ‘방탄’을 쳤을 때 몰아칠 역풍에 대한 두려움이 의원들의 표심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싸늘한 민심에 ‘반대’ 압도한 ‘찬성’=본회의 표결에서는 찬성이 137표로 반대 89표를 압도했다. 지난해 ‘철도비리’ 혐의로 부의된 새누리당 송광호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부결(찬성 73명, 반대 118명)된 것과 대조적이다. 표결에 참여한 새누리당 의원 123명과 무소속 의원 7명이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고 가정하면 새정치민주연합에서도 최소 7표 이상의 찬성표가 나온 셈이다.

박 의원 체포동의안 가결에 대해 여야는 모두 “국민 눈높이에 따른 것”이라는 공통된 입장을 내놨다. 비리를 저지른 동료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무산시키거나 부결시킬 경우 ‘방탄 국회’라는 구태를 던져버리지 못했다는 국민적 비판이 정치권 전반에 쏟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본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새누리당은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는 혁신안을 작년 말 통과시킨 바 있고 그런 입장에서 이번 표결에 임했다”며 “방탄국회, 제 식구 감싸기라는 따가운 비판이 있는데 우리 국회가 국민의 여론을 수용한 결과가 아닌가 보고 있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민들은 야당 국회의원에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한다. 우리 당 의원들은 개인적 온정보다 원칙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 대표는 “고통스러운 선택이었다. 박 의원에게 미안하다”며 “오늘 밤은 소주 한잔 해야 잠을 청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썼다.

◇긴박했던 하루, 눈물로 호소한 박 의원=여야는 오전부터 소속 의원 전원에게 본회의 참석 여부를 확인하는 등 부지런히 표 단속에 들어갔다. 새누리당은 의결정족수 미달로 표결이 불발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의원들에게 해외·지방 출장 일정 조정을 당부하는 등 수차례 ‘총동원령’을 내렸다. 특히 정치개혁과 노동개혁 등 연내 처리해야 할 중요한 과제가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 여론에 동력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기류가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본회의 참석 여부를 놓고 막판까지 고심하는 등 동정론과 원칙론이 끝까지 충돌했다. 하지만 당 혁신위원회가 표결 참여 촉구 성명을 준비하는 등 원칙론이 의원들을 강하게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당사자인 박 의원은 본회의 표결 직전 신상발언을 신청해 동료 의원 및 국민에게 눈물로 사죄했다. 그는 “본회의장에서의 발언 기회가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며 “이유를 불문하고 진심으로 사죄 말씀을 드린다”며 운을 뗐다. 이어 “불체포 특권 뒤에 숨거나 방탄막을 요청하지 않겠다”며 잘못을 시인하기도 했다. 그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더 이상 우리 국회가 저로 인해 비난 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며 “30여년의 정치여정을 이제 접는다”고 했다. 발언을 마친 박 의원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은 뒤 어두운 표정으로 자신의 체포동의안 표결에 참여했다. 하지만 박 의원은 표결 결과가 나오기 전 별도의 입장 표명 없이 본회의장을 나섰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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