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일정 서둘러 공개, 中·美 ‘눈치 보기’ 작용했나

입력 2015-08-14 02:07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10월 16일 정상회담 개최 발표 배경을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이례적으로 서두른 정상회담 발표엔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청와대와 정부의 이른바 ‘눈치 보기’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는 13일 오전 5시를 기해 10월 한·미 정상회담 개최 사실을 발표했다. 주요국과의 정상회담이 2개월 전 공식 발표된 것은 외교적 관례로 볼 때 유례없이 빠른 시점이다. 정상회담은 통상적으로 2∼3주 전에 발표돼 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미 양국이 협의 절차를 거쳐 합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가 이처럼 한·미 정상회담 일정을 서둘러 공개한 것은 중국과 미국을 동시에 ‘배려’한 끝에 나온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박 대통령의 전승절(9월 3일) 참석을 기대하는 반면 미국은 박 대통령의 참석을 내심 불편해하고 있다. 동아시아 패권을 둘러싼 미·중 양국의 힘겨루기 측면 때문이다. 청와대는 중국의 초청을 거부할 수도, 그렇다고 미국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 참석을 공식화하되 이에 앞서 한·미 정상회담 일정을 발표함으로써 미국의 체면을 세워준 것 아니냐는 시각이 많다. 이는 “미·중의 러브콜은 축복(윤병세 외교부 장관)”과는 달리 우리 정부가 미·중 사이에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했다는 지적이 나올 만한 대목이다.

정상회담 발표와 관련한 청와대의 대언론 사전공지 시간과 방식도 서두른 흔적이 역력하다. 청와대는 13일 0시를 전후해서야 언론에 ‘오전 5시 엠바고’를 정해 문자메시지로 공지했다. 한·미 양국 간 발표 시점이 합의된 것도 12일 늦은 밤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오바마 대통령과 백악관 핵심 참모들은 휴가를 간 상태다. 이를 두고 마지막 단계에서 휴가 중인 오바마 대통령의 최종 결정을 기다리느라 합의가 늦어진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박근혜정부의 청와대 외교·홍보라인은 미국과 중국 관련 사안에 대해 유독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여왔다. 지난 6월 한·미 정상회담 연기 직후 박 대통령은 미국 언론 워싱턴포스트(WP)와 인터뷰를 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대통령의 인터뷰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WP에 인터뷰가 실린 뒤에도 발언록을 공개하지 않았다. 결국 국내 언론은 WP 기사를 번역해 박 대통령 발언을 전해야 했다.

앞서 지난해 9월 박 대통령의 뉴욕 싱크탱크 전문가 간담회 당시엔 박 대통령의 사전 발언자료를 ‘전문 취소’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사전 자료에는 “한국이 중국에 경도됐다는 시각은 오해”라는 박 대통령 발언이 있었지만, 실제 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를 놓고 청와대가 중국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었다.

남혁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