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서윤경] 경제 통계의 동떨어진 현실감

입력 2015-08-14 02:22

세종특별자치시로 내려온 지 열흘이 막 지났다. 매일 아침이면 갈매로 477에 있는 기획재정부 청사로 출근하는 기자의 머릿속에 어느 날 갑자기 미국의 앨라배마주(州)에 있는 소도시 셀마가 떠올랐다. 이름조차 생소한 이 지역을 알게 된 건 최근 개봉한 영화 ‘셀마’를 통해서였다. 영화는 1965년 3월 미국에서 흑인들이 투표권을 얻기 위해 셀마 행진을 계획한 마틴 루서 킹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600명의 흑인들은 앨라배마 주지사인 조지 월래스와 면담하기 위해 셀마에서 주도(州都) 몽고메리까지 비폭력 평화 행진에 나섰다. 그러나 대장정의 출발점이었던 ‘에드먼트 패터스 다리’에서 이들이 만난 건 월래스 주지사가 아니라 그가 보낸 경찰이었다. 경찰은 최루가스와 진압봉, 채찍까지 동원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무차별 폭력을 가했다. 이를 지켜보는 백인 주민들은 경찰의 행동에 환호성을 질렀다.

영화 속 폭행 장면에서 유독 눈길을 끈 한 사람이 있었다. 한 방송사의 백인 기자였다. 50년 전 이 기자는 현장을 찍어 미 전역에 생중계했다. 리포팅은 공중전화 부스에서 이뤄졌다.

당시 린든 존슨 대통령이 방송 화면을 보며 “7000만 국민이 보고 있다. 전 세계로 방송될 것”이라며 우려했다. 그리고 현실이 됐다. 방송은 셀마 행렬을 미국 전역에 알렸고 사람들이 셀마로 향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행진을 시도했을 때 행렬에 참석한 사람은 2600여명으로 늘어났다. 그중 30%가 백인이었다.

기재부에서 느닷없이 셀마를 떠올린 이유는 바로 영화 속 기자 때문이었다. 지난 2주 동안 기재부는 무수한 자료를 쏟아냈다. 그 자료들 가운데는 매년 이맘 때마다 주목을 끄는 50여 페이지에 달하는 세제개편 관련 자료도 있었다. 하지만 마음에 걸린 것은 경제 동향을 알리는 통계자료들이었다. ‘통계로 본 광복 70년 한국 사회의 변화’ ‘2015년 8월 최근 경제 동향’ ‘2015년 2·4분기 시·도 서비스업생산 및 소매판매 동향’ ‘2015년 7월 고용동향’ ‘2015년 2·4분기 지역경제 동향’ 등 비슷한 듯 다른 자료를 내놨다.

여기서 통계자료만 놓고 보자. 지난달 15∼64세 고용률은 66.3%로 전년 동월 대비 0.3% 포인트 상승해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82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내놓은 자료에서는 한국의 소비자물가지수가 65년 3.02였던 것에서 지난해 109.04로 36배나 증가했다. 자료는 미국이나 일본, 호주 등 선진국에 비해 한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낮은 편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기재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달 소비자 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0.7% 상승하는 데 그쳤다고 했고 통계청은 2분기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기 대비 0.5%만 상승했다고 했다. 자료만 보면 그럴 듯했다. 물가는 0%대를 유지하며 안정된 상태였고 취업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언론 플레이’는 연예인만 필요한 게 아니다. 마틴 루서 킹 역시 생전에 카메라를 잘 이용하는 전략가로 평가받았다. 카메라 속 진정성 있는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감동했다. 하지만 공감을 사지 못하는 홍보는 비난만 받을 뿐이다.

기재부가 내놓은 통계 자료에서 불편한 언론 플레이를 느낀 것도 이 때문이다. 대한민국 청년들은 일자리를 구하고 싶다고 호소하고 주부들은 장바구니 물가가 비싸다고 외친다. 기재부는 숫자를 해석하기보다는 그들이 서 있는 ‘에드먼트 패터스 다리’에 가 보는 것은 어떨까. 서윤경 경제부 차장 y27k@kmib.co.kr